brunch

감상문: [로그인 벨지움]을 보고

진짜 나에게 로그인하는 법

by 길고영
58700_61a57fd0e401d[X280,400].jpg




김천시립도서관에서는 DVD를 빌려볼 수 있다.

보유 DVD 목록에 있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고른 영화들은

도서관 사서들이 큐레이팅 한 영화들이다.


그중 나에게 선택되고, 감상문까지 이어지는 영화는 극 소수이다.

[로그인 벨지움] 또한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영화인 줄 알았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극 영화가 익숙한 내게 펼쳐진 다큐멘터리 형식을 따른 영화.

이 영화는 처음엔 낯설기만 했다.

관람 후까지도 그 매력을 바로 느끼지 못했지만,

영화를 천천히 곱씹는 과정에서

나는 이 영화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영화는 팬데믹이 시작되고, 갑자기 일이 끊긴

배우 유태오가 낯선 나라 벨기에의 호텔에 머무는 일상으로 시작된다.

끼니도, 빨래도,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하는 그곳에서

그는 점점 자신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배우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그 자신으로서의 삶을 말이다.


영화 중반쯤, 나는 오프닝에 나왔던 문구를 다시 떠올렸다.

“사람이 외로울 때, 그 사람은 진짜가 된다.”


태오는 낯선 땅에서 혼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로그인했던 걸까?

그 순간부터 그는 헬스, 만두 만들기, 꽃, 단팥빵 만들기를 좋아하는

‘진짜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천천히 하나씩 알아갈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청소년의 사춘기를 지나 직장인이 겪는 오춘기.

그곳에 빠진 사람들은.

열심히 달려온 내가

진짜로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고민하는

긴 터널을 지난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정말 영화가 말하고자 한 바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해석이 영화보다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혼자라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속도로, 진짜 나에게 로그인해 본 시간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화. 사전투표 참관인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