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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이별까지 7일]을 보고

가족을 다시 보다

by 길고영




중고등학교 때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본 영화를 종종 보았고, 일본영화의 장점을 알게 되었다.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낯선 시선, 그 ‘참신함’이 내게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가족 문화를 대하는 태도까지 부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몇 년 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오늘은 [이별까지 7일]을 보았다.


한국에서 ‘가족’을 다룬다는 건,

어느 정도 규격화된 감정 구조와 서사 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 틀을 깨려는 시도는 아직 드물 수도,

혹은 내가 접한 작품들의 폭이 좁았을 수도 있다.


일본은 고도성장기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지나 2025년 현재,

니케이 지수는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찬란한 10년을 보내고,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 강국이 되었지만,

마이너스 성장이 예고된 지금,

국민 개개인의 여유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에서

이제는 ‘수신’만을 으뜸으로 삼고,

‘제가’조차 외면되는 시대가 온 듯하다.

사랑보다는 조건을 앞세운 결혼,

관계보다는 성취에 집착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일본 영화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별까지 7일]에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 형, 동생, 아버지가 등장한다.


작은 아들 슌페이는 처연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전화해서 용돈을 요구하지만,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큰아들 고스케는 직장도, 가정도 안정적이지만,

그가 지금의 어른이 되기까지 가족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모른다.


남편은 사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내에게 지하철역까지 마중 나오길 바라지만,

변변한 생활비는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 세명의 철없는 남자들에게

엄마가 아내가 죽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비록 남은 시간이 7일 일지라도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려 한다.


그런데, 이 인물들이 왜 이렇게 진부하거나 신파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내 영화 감상 경험이 짧아서일까?

아니면 정말 그들의 영화가 훌륭해서일까?


나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는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서 다시 재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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