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정면으로
단편집을 다 읽겠다고 다짐하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한 편을 다 읽기도 전에, 생각에 잠겨버렸다.
결국 다짐은 잠시 미뤄두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소설은 그림자에 대한 묘사에서 시작된다.
곧 미경의 전화가 이어지고, 주인공은 그 제안을 뿌리친다.
대신 친구 바오로의 전화를 받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바오로는 미경의 소식을 듣고 몸을 나누었고,
주인공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린다.
단편이 전하는 메시지를 곧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먼저 내가 이해한 만큼 정리해 본다.
그림자는 태양을 마주할 때 생기는 것이다.
나는 그림자를 팔았기 때문에 너를 보고도,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말.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그는 그림자를 판 것이 아니라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기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은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그가 그렇게 된 데엔 어쩌면
엄마의 영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남자들에게 강한 반응을 보이던 엄마.
그 반작용으로 주인공은 모든 일에
반응을 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소설 속 그는 미경을 위로하지 않고,
바오로의 말에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으면
비판받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
나도 그랬다.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림자가 없던 내가 안쓰럽고,
빛을 정면으로 바라볼 내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