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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읽고

빛을 정면으로

by 길고영

단편집을 다 읽겠다고 다짐하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한 편을 다 읽기도 전에, 생각에 잠겨버렸다.

결국 다짐은 잠시 미뤄두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소설은 그림자에 대한 묘사에서 시작된다.

곧 미경의 전화가 이어지고, 주인공은 그 제안을 뿌리친다.

대신 친구 바오로의 전화를 받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바오로는 미경의 소식을 듣고 몸을 나누었고,

주인공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린다.


단편이 전하는 메시지를 곧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먼저 내가 이해한 만큼 정리해 본다.


그림자는 태양을 마주할 때 생기는 것이다.

나는 그림자를 팔았기 때문에 너를 보고도,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말.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그는 그림자를 판 것이 아니라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기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은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그가 그렇게 된 데엔 어쩌면

엄마의 영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남자들에게 강한 반응을 보이던 엄마.

그 반작용으로 주인공은 모든 일에

반응을 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소설 속 그는 미경을 위로하지 않고,

바오로의 말에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으면

비판받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

나도 그랬다.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림자가 없던 내가 안쓰럽고,

빛을 정면으로 바라볼 내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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