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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21. 2022

가방끈이 짧은 작가들은 정말 없는가?

Writer's block Diary : 19일째 

 


문학에 있어서 학력이 얼마나 중요할까?


문학을 즐기는 사람에 제한이 없듯, 문학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제한은 없다. 그러나 최종 학력이 최소 대졸 이상이라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조성된 때문인지, 문학계에서도 언젠가부터 학력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학력이 높다면 지적인 수준과 교양이 높을 것이고, 당연히 좋은 문학을 생산해내리라는 어렴풋한 기대와 더불어서.


그렇다면 문학에 가방끈이 짧은 작가들은 정말 없는 것인가?


나 역시 마흔 가까운 나이까지 고졸로 살아왔으므로 당연히 이러한 물음을 품고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작가들이 누구 누구인지 소중하게 사례를 수집하며 힘을 얻었는데 그들은 역시 있긴 있었다. 워낙에 소수기는 하지만.


하기야 없을 리가 있나. 어디나 대세를 거스르는 아웃사이더는 존재하는 법. 심지어, 아웃사이더라는 용어 자체를 재발견한 사례도 있는데 1956년 영국에서 등장한 <아웃사이더Outsider>라는 문학 평론집이 그것이며, 이 책은 발행 첫 날 5천부가 매진되었다.


인간은 자기가 세계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을 얻게 된다. 인간은 미망에 빠져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버릇에 젖어 있으므로 자기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아웃사이더가 손쉽게 얻게 되는 까닭은, 그가 세상에 흔한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나 남자나 모든 인간은 이 자기기만을 통하여 자기 나름의 감정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맹인에 불과하다. - 아웃사이더, 콜린 윌슨 


까칠하디 까칠한 이 저자는 콜린 윌슨(Colin Wilson).


그는 평론집을 냈지만 동시에 창작하는 작가이기도 한데 영국의 문학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과 작법에 관한 썰을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뜻밖에 그는 중학교만 나온 뒤 계속 노동을 하며 살아왔고, 철학자와 교류한 적은 있으나 체계적인 문학 수업은 전혀 받지 않고 독학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의 첫 평론집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보통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으면 문단에서는 짱돌을 던지는 게 관례인데, 앵그리 영맨 세대가 주목받는 시점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필립 토인비와 같은 당대 비평가들마저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윌슨은 아웃사이더답게 사람들의 주목을 피해 낙향해버렸지만 이후로도 정신기생체(The Mind Parasites), 소설의 진화(The Craft of the Novel), 인류의 범죄사(A Criminal History of Mankind) 같은 온갖 장르의 책들을 100권 넘게 토해내다 갔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자연스레 소설가 장정일을 연상하리라. 90년에 피크를 찍은 장정일 역시 중졸이라는 학력과는 무관하게 독특한 관점과 개성 강한 글쓰기로 일찌감치 주목받은 바 있으므로.


한때 그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비롯해 대부분의 소설이 영화화되며 인기를 얻었지만 곧 큰일을 겪게 된다. 영화 <거짓말>의 원작 소설인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너무 야하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앞서 1995년 마광수 교수가 자신의 소설 <즐거운 사라>로 음란물 배포라며 유죄를 받은 후였다.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장정일의 작품이 대법원 유죄 판결이 확정된 건 놀랍게도 고작 2000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튼 그는 윌슨처럼 계속하여 읽고 썼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시집과 희곡집, 소설집 외에 <삼국지> 시리즈, <독서일기> 시리즈, 최근의 <악서총람>과 <신악서총람>에 이르기까지 수십 권에 달하는 책이 그가 작가임을 증명한다. 여호와의 증인으로 인한 병역 거부, 소년원 경험 등은 장정일이라는 작가에게 매력을 더할 뿐이다.


나는 여러 면에서 그의 작가됨을 존경하는데, 특히 그토록 갖은 일을 겪었으면서도 글쓰는 일 하나만큼은 놓치지 않은 점, 그래서 기어이 남들은 흉내내지 못할 지문과도 같은 문장을 써냈다는 점에서 매번 감동하고 만다.


무얼하는 곳일까? 세상의 숱한 유원지라는 곳은
행여 그런 땅에 우리가 찾는 희망의 새가 찔끔찔끔 파란
페인트를 마시며 홀로 비틀거리고 있는지. 아니면
순은의 뱀무리로 모여 지난 겨울에 잃었던 사랑이
잔뜩 고개 쳐들고 있을까?
-강정 간다, 장정일


한편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웹소설 연재가 점차 뿌리를 내릴 무렵, 김동식이라는 작가가 등장한다.


검정고시를 보았고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그는 어느날부턴가 짬을 내어 아주 짧은, 소설이라기에는 너무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글을 연재한 장소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이후 요다 출판사의 눈에 띄어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는데 <13일의 김남우>,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나의 인간, 인류의 하나>와 같은 소설집을 열 권이나 내며 하나의 팬덤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직 끝이 아니다.


나는 글을 좀 써보려고 했는데
생계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더군.
내가 쓰는 거라곤 대개는
섹스 잡지 따위에나 실릴
그런 쓰레기들만
끼적대는 정도였어.

에디는 좀 그려보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도 별볼일은 없었지.
하지만 그는 나보다도 나은 게 있었는데
커다란 집에서
끝내 주게 예쁜데다가
그를 먹여 살리기까지 하는
애인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지.

에디와 나는
항상 술을 퍼마셨어.
우리는 일도 만만치 않게
많이 했지만
술 마시는 것만큼은
정말 확실하게 했거든.

그는 자기 그림을
집 지하실에 모아 두었어.
수백 개의 그림이 거기 쌓인 채
서로 달라붙어 있었지.

그는 언제나
노란색 물감만을 사용했고 거기다가
검은 잉크를 넣어 휘저었지.
노란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어.

하루 종일 나는
그의 집에서 술을 마셨고
밤이 되면 나는
우리 집으로 돌아와
그리고 계속해서 마셨어.
그리고 썼지.

그 시절은
영감이 넘치던 시기.
비록 우리가
그걸 가지고 뭔가 이루지는 못했고
게다가 정신병원으로 실려 가기 일보 직전에다가
인생 막다른 골목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았으나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함께
술을 마셨대고
그러고 나서는 그들과 주먹다짐을 했고
고함치며 돌아다녔지.

햇볕이 쨍쨍 내리쬐거나
아니면 자정이거나
그까짓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어.
우리는 터질 것 같았으니까.

에디는 그림을 그릴 때
음악 듣기를 좋아했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글 쓸 때는
나도 그랬으니까.

"네가 쓴 제기랄 놈의 시 몇 개 좀
읽어주라.....".

나는 읽고 그는
캔버스 위에서
붓을 사납게 휘둘렀지.
검은 선 몇개 그어진, 오직 노란색으로만,
그리고 그의 끝내 주게 예쁜 애인이
그걸 보고 있고.

아마도 두 달이나
아니면 석 달쯤 되었을 거야.
그렇게 같이 빈둥댄 지가.

어느 날 나는
그의 집으로 갔는데
에디 대신에
그의 애인이 문을 열었어.

"에디는 갔어." 그녀가 말하더군.

"내가 쫓아내 버렸어."

"그가 자기 그림은 가지고 갔어?"

"아니. 내가 그것들을
모두 다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렸는걸."

그녀가 더 이상
끝내 주게 예쁘게 보이지 않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

"아니 어디로 갔거나 말거나
개뿔이나 상관 있을게 뭐야."

그녀는 문을 닫아 버렸지.

에디는 그 후로
한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

가끔 나는
그를 생각해.

어느 날 밤 나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
그 집으로 가서
에디의 옛날 애인을 한번 꼬셔 보려고
집적거려봤지.

나는 성공하지 못했어.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뭐.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써야 했어.
나는 오십세였어.
직업도 없었고.

심지어 나는 그림을 그려 보려고 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에디가 한 것과는
비슷하게도 되지 않더군.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썼어.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을.

그후 에디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어.

얼마 지난 뒤에는
그는 내 기억에서
그냥 사라져 버렸지.
그것이 오늘 밤으로
십년이 된다.

에디, 난 다른 사람들을
돌봐 줄 여유는 없어.
하지만 너라면
한 번쯤 찾아와도
좋았을텐데.

소파에서 재워 줄 수도 있었고
그냥 바닥에서 자도 좋았잖아.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는 걸
알기는 하지만.

그러나 노란색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색

단지 네가
이 시를
어디에선가 읽을지도 모르니.

-두 명의 술꾼, 찰스 부코우스키


미국의 노동자이자 술꾼이자 망나니이자 시인인 우리의 찰스 부코우스키(Henry Charles Bukowski)도, 전혀 문학과는 동떨어진 지점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겼다. 학대당한 유년, 술로 망가져버린 말년을 보내면서 획득한 그의 유일한 교양이 바로 문학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중퇴자이기에 위에 소개한 작가들을 포함하면 가장 가방끈이 긴 작가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한 그의 묘비명은 "Don't try". 애쓰지 마라, 쓰기 위해 아무것도 애쓰지 마라. 그는 지저분한 여성 편력과 거친 사고방식을 단 한 번도 철회하지 않았고, 반항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자세임을 입증했다.


물론 독특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대학을 가지 않고 아웃사이더가 될 필요는 전혀 없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아웃사이더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있다. 그런 인간들에게도 희망은 필요하고, 선례는 소중하다.


때때로 성공한 작가들의 화려한 학력 앞에 어지러워지곤 하는 나는 그래서 콜린 윌슨과 장정일과 김동식과 찰스 부코우스키를 까먹지 않으려고 애쓴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기보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 솔직한 문장, 모든 판단을 내리기 전에 단지 등장인물의 감정에 충실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 문학에 그 이상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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