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block Diary : 19일째
문학에 있어서 학력이 얼마나 중요할까?
문학을 즐기는 사람에 제한이 없듯, 문학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제한은 없다. 그러나 최종 학력이 최소 대졸 이상이라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조성된 때문인지, 문학계에서도 언젠가부터 학력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학력이 높다면 지적인 수준과 교양이 높을 것이고, 당연히 좋은 문학을 생산해내리라는 어렴풋한 기대와 더불어서.
그렇다면 문학에 가방끈이 짧은 작가들은 정말 없는 것인가?
나 역시 마흔 가까운 나이까지 고졸로 살아왔으므로 당연히 이러한 물음을 품고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작가들이 누구 누구인지 소중하게 사례를 수집하며 힘을 얻었는데 그들은 역시 있긴 있었다. 워낙에 소수기는 하지만.
하기야 없을 리가 있나. 어디나 대세를 거스르는 아웃사이더는 존재하는 법. 심지어, 아웃사이더라는 용어 자체를 재발견한 사례도 있는데 1956년 영국에서 등장한 <아웃사이더Outsider>라는 문학 평론집이 그것이며, 이 책은 발행 첫 날 5천부가 매진되었다.
인간은 자기가 세계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을 얻게 된다. 인간은 미망에 빠져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버릇에 젖어 있으므로 자기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아웃사이더가 손쉽게 얻게 되는 까닭은, 그가 세상에 흔한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나 남자나 모든 인간은 이 자기기만을 통하여 자기 나름의 감정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맹인에 불과하다. - 아웃사이더, 콜린 윌슨
물론 윌슨은 아웃사이더답게 사람들의 주목을 피해 낙향해버렸지만 이후로도 정신기생체(The Mind Parasites), 소설의 진화(The Craft of the Novel), 인류의 범죄사(A Criminal History of Mankind) 같은 온갖 장르의 책들을 100권 넘게 토해내다 갔다.
나는 여러 면에서 그의 작가됨을 존경하는데, 특히 그토록 갖은 일을 겪었으면서도 글쓰는 일 하나만큼은 놓치지 않은 점, 그래서 기어이 남들은 흉내내지 못할 지문과도 같은 문장을 써냈다는 점에서 매번 감동하고 만다.
무얼하는 곳일까? 세상의 숱한 유원지라는 곳은
행여 그런 땅에 우리가 찾는 희망의 새가 찔끔찔끔 파란
페인트를 마시며 홀로 비틀거리고 있는지. 아니면
순은의 뱀무리로 모여 지난 겨울에 잃었던 사랑이
잔뜩 고개 쳐들고 있을까?
-강정 간다, 장정일
나는 글을 좀 써보려고 했는데
생계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더군.
내가 쓰는 거라곤 대개는
섹스 잡지 따위에나 실릴
그런 쓰레기들만
끼적대는 정도였어.
에디는 좀 그려보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도 별볼일은 없었지.
하지만 그는 나보다도 나은 게 있었는데
커다란 집에서
끝내 주게 예쁜데다가
그를 먹여 살리기까지 하는
애인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지.
에디와 나는
항상 술을 퍼마셨어.
우리는 일도 만만치 않게
많이 했지만
술 마시는 것만큼은
정말 확실하게 했거든.
그는 자기 그림을
집 지하실에 모아 두었어.
수백 개의 그림이 거기 쌓인 채
서로 달라붙어 있었지.
그는 언제나
노란색 물감만을 사용했고 거기다가
검은 잉크를 넣어 휘저었지.
노란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어.
하루 종일 나는
그의 집에서 술을 마셨고
밤이 되면 나는
우리 집으로 돌아와
그리고 계속해서 마셨어.
그리고 썼지.
그 시절은
영감이 넘치던 시기.
비록 우리가
그걸 가지고 뭔가 이루지는 못했고
게다가 정신병원으로 실려 가기 일보 직전에다가
인생 막다른 골목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았으나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함께
술을 마셨대고
그러고 나서는 그들과 주먹다짐을 했고
고함치며 돌아다녔지.
햇볕이 쨍쨍 내리쬐거나
아니면 자정이거나
그까짓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어.
우리는 터질 것 같았으니까.
에디는 그림을 그릴 때
음악 듣기를 좋아했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글 쓸 때는
나도 그랬으니까.
"네가 쓴 제기랄 놈의 시 몇 개 좀
읽어주라.....".
나는 읽고 그는
캔버스 위에서
붓을 사납게 휘둘렀지.
검은 선 몇개 그어진, 오직 노란색으로만,
그리고 그의 끝내 주게 예쁜 애인이
그걸 보고 있고.
아마도 두 달이나
아니면 석 달쯤 되었을 거야.
그렇게 같이 빈둥댄 지가.
어느 날 나는
그의 집으로 갔는데
에디 대신에
그의 애인이 문을 열었어.
"에디는 갔어." 그녀가 말하더군.
"내가 쫓아내 버렸어."
"그가 자기 그림은 가지고 갔어?"
"아니. 내가 그것들을
모두 다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렸는걸."
그녀가 더 이상
끝내 주게 예쁘게 보이지 않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
"아니 어디로 갔거나 말거나
개뿔이나 상관 있을게 뭐야."
그녀는 문을 닫아 버렸지.
에디는 그 후로
한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
가끔 나는
그를 생각해.
어느 날 밤 나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
그 집으로 가서
에디의 옛날 애인을 한번 꼬셔 보려고
집적거려봤지.
나는 성공하지 못했어.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뭐.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써야 했어.
나는 오십세였어.
직업도 없었고.
심지어 나는 그림을 그려 보려고 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에디가 한 것과는
비슷하게도 되지 않더군.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썼어.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을.
그후 에디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어.
얼마 지난 뒤에는
그는 내 기억에서
그냥 사라져 버렸지.
그것이 오늘 밤으로
십년이 된다.
에디, 난 다른 사람들을
돌봐 줄 여유는 없어.
하지만 너라면
한 번쯤 찾아와도
좋았을텐데.
소파에서 재워 줄 수도 있었고
그냥 바닥에서 자도 좋았잖아.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는 걸
알기는 하지만.
그러나 노란색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색
단지 네가
이 시를
어디에선가 읽을지도 모르니.
-두 명의 술꾼, 찰스 부코우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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