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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각로 강성길 Jan 06. 2022

노후 생활이 수수롭다.

우리에겐 노후 생활이 있기나 한 건가?


코로나 19 이전에도 도시에서 노후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름 노후생활에 대하여 자신 있는 은퇴자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1도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은퇴자는  은퇴 이후 직장생활 내지 소득 활동하는 것이다. 마치 헌법의 전문처럼 가장 바람직한 노후 활동으로 인정받는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 면을 조장하는 일면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은연중에 '능력자'임을 드러내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그냥 대충 봐도 능력자인지 알 수 있는 것은 노후 연금도 재산도 나름 넉넉한 사람이 대부분 제2의 직장 내지 소득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개뿔도 없는 도시의 보통 은퇴자들은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설사 책을 읽지 않아도 또는 할 공부가 없더라도 그냥 '공영 사무실'처럼  때로는 '아지트' 삼아서  쾌적한 공간인  가까운 공공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문화교실'에 참여하면서 긴 하루를 소비하는 노후 생활도  있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그리 길지 않은 은퇴자에게는 알뜰하게 세월을 보내도 시원찮을 판에 현실은 오히려 시간을 때우거나 죽이는 모순된 노후 생활이 지속되었다 할지라도 노후생활은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유명한 해외 관광지를 배경으로 한 인증 사진을 핸드폰에 넣는 낙도 있었다.  '내가 요즘 이렇게 지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히 근황을 알리며 혼자 뿌듯함도 누렸다.  주중에는 언제는 갈 수 있는 가까운 골프장에서 100을 넘나드는 스코어에 심한 좌절의 한기를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나의 사전에는 '포기는 없다'며 마치 관우가 칠장도 휘두르듯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연스럽게 의미를 부여하며 운동도 했었다. 


소위 학교 '짱'하고 한 판 붙었다든가 내지는 나를 쫓아다닌 여학생 또는 남학생이 있었다든가 등등 왕년에 있지도 않은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소설 같은 사건 사고 이야기 꽃으로 등산로 곳곳을 가득 채워도 허기진 말문을 해소하지 못해 하산 후 술자리까지 이어지는 것이 다반사였던 시절도 있었다. 


부실하지만 이러던 노후 생활이 지금은 어떠한가? 더 억울한 것은 대선 기간인데도 '속마음'을 보인 죄로 노인에 대한 변변한 공약 아니 '빈 공약' 하나도 듣지 못하고 투표하게 된 현실이 수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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