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훌쩍 커버린 고등학교 남학생
오늘은 대구 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안심역에서 대구 지하철 1호선을 탔다.
안심역과 다음 역인 각산역 사이에 우리 아파트가 있다. 습관적으로, 타러 갈 때는 조금 가까운 안심역으로 가고 내려서 집에 올 때는 상가가 많은 각산역을 이용한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안심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안심역은 대구 지하철 1호선 동쪽의 종점으로 승객보다 빈자리가 훨씬 많았다.
출퇴근 시간에도 신기역까지는 종종 빈자리가 있다.
종점역 이용자의 절대적 특혜이다.
오늘의 소소한 일상은 신기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등학교 남학생이 신기역에서 여러 명이 한꺼번에 탔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들이 지하철 내로 들어왔을 때 내 옆을 비롯하여 여러 군데 빈자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빈자리에 앉지 않았다.
출입문 근처에 그들 끼리 모여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내 옆에 아주 어설프게 엉덩이만 살짝 걸터앉았다.
그와 동시에 여러 명이 그 근처에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지하철에 탄 이후,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없었다.
자리에 앉은 친구가 핸드폰을 꺼내는 과정에서 귀에 들어가는 이어폰의 부드러운 고무 부분이 어찌 된 일인지 지하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움츠리고 지켜만 보고 있다.
정적이 흐른다.
서서 보고 있던 친구가 툭툭 치면서 현장의 이어폰 고무를 손짓으로 알려주었다.
앉아있는 친구는 눈빛으로 서서 있는 친구에게 갖고 오라고 침묵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자 서서 있는 친구가 하는 말이 " 손이 없나 발이 없나"하면서 나지막이 퉁명스럽게 말을 건넸다.
처음부터 말은 없었지만 사소한 사건 이후 고요한 긴장감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어폰 고무를 떨어트린 친구도, 서 있는 다른 친구도 가만히 있었다.
“주워라” “주워 달라” 식의 무언의 작은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출입문 쪽에 있던 한 친구가 슬그머니 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 앞으로 왔다.
그러자 재빨리 그 친구에게 `이어폰 고무를 집어 달라`는 의미로 다리를 툭툭 치면서 손으로 이어폰 고무를 가리킨다.
그 친구는 진행상황을 알지 못하는지 순순히 이어폰 고무를 집어 들었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광경은 그때 일어났다.
그 친구는 이어폰 고무를 반대편 출입구에 서 있는 친구 쪽으로 슬그머니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이 상황을 관조하며 즐기고 있었다.
이 긴장된 순간에 유일하게 시끄러운 소리는` 아양 역`이라고 알리는 안내방송뿐이었다.
나는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내가 중학교 시절에, 같은 학교에 있는 고등학교 3학년 선배를 보는 느낌이 순간 들었다.
수염은 어설프게 나고, 정리 덜된 더벅머리에, 많이 자연 스러 위진 교복 그리고 살짝 퍼진 여드름은 어른보다 더 어른처럼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추억의 느낌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출입구에 있던 또 다른 학생이 자기 발아래 있는 이어폰 고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세상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은 남학생 친구에게 던져주었다.
잘 받아서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어폰 고무를 이어폰에 끼우고 무엇인가 열심히 듣는다.
긴장이 사라진 침묵이 시작되었다.
말이 적은 고등학교 남학생의 특징 중 한 단면을 지금 본 것이다.
가정이나 사회는 그 들에게 `말을 많이 아껴서 해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들은 어느덧 몸과 마음이 많이 성숙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