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미선 팀장은 종잡을 수 없었다. 한없이 순수하다가도, 표독하게 변할 때는 사정없었다. 순종과 반항 이중적인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요 며칠간 팀장이 한 기묘한 행동들은 나에게 혼란에 더 큰 혼란을 주었다.
그날 나는 본부장님과 미선 팀장님과 회의를 했다. 미선 팀장이 1주일 동안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젝트 계획 (안)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전자 장비 제조업체 인 우리 회사가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여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는 프로젝트였다. 성공하면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게 절감되는 매우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회사에서 사장님까지 주목하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만큼 공을 들인 프로젝트였다.
발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본부장님 표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흠... 비용 절감 기대효과 항목에서 산출된 비용이 잘못 계산된 것 같네요.'를 시작으로 날 선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참을 비판 피드백을 날리다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뭐 나머지는 방향이나 계획은 합리적 수준인 것 같아요.'라고 본부장은 마무리했다.
열심히 준비한 발표자료에 비판 의견만 나와서 그런가 미선 팀장은 눈이 살짝 화가 나 있었다. 표정 관리는 하고 있는 눈은 미처 관리되지 못했나 보다.
원래 본부장님은 Mr. 칭찬으로 불릴 만큼 아낌없는 칭찬으로 유명한 분이다. 특유의 리액션은 TV에 나오는 예능인 못지않게, 오오~~~, 와우~~, 박수!!, 이런 추임새를 맛깔나게 해서 듣는 사람이 기분 좋게 만든다. 그런데 그날 본부장님도 한껏 긴장하셔서 그랬는지 아니면 진짜 프로젝트 계획이 별로 였는지 모르겠지만 날 선 비판의 말만 쏟아졌다.
미선 팀장은 회의 내내 '네 알겠습니다....'를 저음으로 반복만 했다.
그러다가 본부장님 피드백이 끝나자마자 대뜸
'그런데 이 계획서에서 뭐 잘 된 점은 없나요?'
'다 별로인 건 아니죠?'
'그래도 일주일 엄청 신경 써서 했단 말이에요.'
이 세 마디 말이 이전 '네 알겠습니다'보다 최소 2배는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톡 쏘는 듯한 목소리에는 공격성이 녹아져 있었다. 팀장의 얼굴에는 반항스러운 표정과 칭찬을 갈구하는 듯한 눈빛이 이상하게 얽혀 있었다.
본부장님은 '흠 뭐 나쁘지는 않았는데, 일단 피드백한 거 반영해서 다시 한번 봐요.'라고 말했다.
이걸로 확신이 들었다. 내 생각에 본부장은 분명 다 마음에 안 들어한다. 그냥 애써 돌려서 표현하는 것 같았다.
팀장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열심히 했는데... 이게...'
뭔가 말을 이어나가다 말다 이어나가다 말다 했다.
'아 그러면 그냥 내가 여기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나 한잔씩 사줄게요.'
본부장은 기분이 좀 짠했는지 넌지시 이야기했다.
'근데요 본부장님!!!'
'카페테리아 말고 저... 별다방 커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 일주일 간 애썼으니까 좀 좋은 커피 뭐 화이트 초콜릿 모카 이런 거 마시고 싶단 말이에요...'
'하하하 그래요 그렇게 해요.'
'헤헤 감사합니다~ 저희 팀에서 주문하겠습니다~'
그제야 팀장 얼굴은 살아났고, 내 눈에 팀장의 미소가 그렇게 순수해 보일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우리 팀장이지만 창피했다. 내 얼굴은 뜨거워졌다.
본부장은 사람 좋은 미소만 머금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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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방 커피가 도착하고 팀장과 나는 둘이서 아까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팀장님이 대뜸 물어봤다.
'매니저님이 보기에는 어때요? 그렇게 내가 많이 별로였나? 응? 어때요??'
내 온몸에서 경계음이 울렸다. 또 시작되었다. 팀장님은 꼭 자기에 대한 평가를 요청한다. 뭐 훌륭한 팀장은 자기 성찰을 하기 위해서 남의 의견을 잘 경청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건 경우가 많이 다르다. 이건 그냥 '팀장님 존경한다. 훌륭하다.' 이런 입바른 소리를 듣기 원해서 묻는 질문이다.
원래 미선 팀장은 틈만 나면 팀원들에게 자기에 대한 피드백을 자주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고 팀원들도 그렇고 피드백 달라길래 뭐가 문제고 뭐가 좋은지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그런데 칭찬할 때는 흐뭇하게 듣다가 비판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날 선 반문들이 나온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나요?'
'하하 너무 성향이 부정적인 거 아니에요?'
결정적인 건 비판적인 의견을 많이 한 직원일수록 '부정적인 직원'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다.
그렇게 찍힌 직원은 연말 인사고과 종합평가란에 '부정적인'이라는 문구가 꼭 들어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미선 팀장의 '나 어때?' 유형의 질문은 함정 질문이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저렇게 대놓고 자기에 대해서 평가해 달라고 하면 매우 매우 난감하다. 그래도 준비해둔 레퍼토리대로 침착하게 칭찬을 했다. 나도 자존심은 있어서, 없는 칭찬을 하기는 싫다.
'일주일 동안 정말 고생하셨잖아요. 본부장님이 그런 열정을 좀 못 캐치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 자기 업무도 아닌데 이런 별도 프로젝트에 누가 이렇게 열심히 해요. 제가 보기엔 그런 점은 팀장님이 최고인데... 본부장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네요.'
이렇게 일주일간 열심히 했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결과물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교묘하게 피해 가면서 썰을 풀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다 사실이다. 미선 팀장은 저렇게 누구에게 발표하는 업무일수록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업무도 아닌데 참 열심히 한다.
'그렇지요? 저도 그래요!!!, 도대체 본부장님은 오늘 또 뭐가 꼬여있는지 원...'
표정이 한층 더 밝아진 것을 보니 오늘도 미선 팀장 대응에 성공했나 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미선 팀장은 이상하게 자기 주관? 자기 평가라든가 그런 게 거의 없다. 자기가 최고라고 말은 해서 자존감이 강강한가 싶다가도, 막상 저렇게 남의 평가에 예민하고 목숨 걸듯이 좋게 평가를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결정을 잘 못한다.
웬일로 단호하게 이거 하자는 결정이 되면 그건 2가지 경우이다.
본부장님이 하라고 하던가, 아니면 좀 용기 있는 팀원이 하자고 하던가.
이거 해요. 우리 해봅시다라고 당차게 이야기하면 꼭 덧붙이는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본부장님이 시키세요 시리즈이다.
'본부장님이 하라네요. 그러면 해야지요...'
'이거 왜 우리가 해야 돼요? 타 부서가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왜 하긴 본부장님이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지'
여기서 추가 질문을 하면 민선 팀장은 항상 마지막 말을 '본부장님이 하래요.'라고 마무리한다. 어떻게 보면 절대 논리다.
두 번째 경우는 아니면 XX 팀원이 하자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거 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끝난다.
아무도 먼저 선뜻하자고 말 안 하고 있으면
'한 명을 지목하면서 이거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잘 모르겠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면 '아 그래 해봐요' xx 팀원이 하자고 하면 한번 해봐야죠. 이런 식으로 결정들을 xx팀원 태그 걸 듯이 떠넘긴다.
이렇게 꼭 의사결정이 석연치 않는다.
오늘도 이런 의사결정에 대한 자신만의 숙제를 나에게 떠넘기는 느낌이 들었다.
미선 팀장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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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 팀장에 대한 심리분석은 다음 편에 소개됩니다.
우리 팀장님은 어른아이 (1부 이야기 편)
우리 팀장님은 어른아이 (2부, 해설 편)
우리 팀장님은 어른아이 (3부, 솔루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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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출간 도서>
마음도 잘 퇴근했나요 - 회사와 나의 건강한 관계를 위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