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나는 2019년에 차병원 난임센터에서 난소나이 검사를 받았었다. 당시 기혼자만 정부 지원이 되었기에, 20만원 정도였던 검사 비용은 전부 자부담이었다.
결혼할 사람이 있냐고 묻는 말에 '없다'라고 말하자, 의사는 내 난소 나이가 실제 내 나이보다 많다며, 하루라도 빨리 난자 동결을 하라며 과배란 유도 시술을 권했었다.
며칠간 고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덕질하러 유럽여행을 떠났다.
덕질의 끝판왕 단계를 찍어보고 나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관심사를 '가수'에서 '나'로 바꾸고 나니 생물학적 내 나이에 대한 조바심이 덜컥, 나버렸고 급기야 결혼정보회사에 덜컥, 가입해 버렸다.
그 일련의 경험에서 가장 충격을 먹었던 부분은 내 난소 나이도 아니고 결혼정보회사 가입 비용도 아니었다.
난임 센터에 '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희망이 좌절되고,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들을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대기실 구석에서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혼자 엉엉 울던 그 여인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6년이 지나고 내가 다시 난임 센터에 들어가게 될 줄이야.
이번에는 남편 손을 잡고 간 것이 다르면 다르달까.
내가 다니는 곳은 천안에서 오래되고 꽤 큰 산부인과 병원인데, 이곳에 방문하는 외국인 환자도 많은지, 5개국 의료 통역사도 상주해 있었다.
실제로 내가 갈 때마다 '스바시바'라며 러시아어로 인사를 나누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아시아 계열의 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오늘은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를 했다.
병원 오는 길은 살짝 설레고 기분 좋았는데, 막상 검사들을 하는 동안은 좀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프거나 다치지도 않았는데 병원을 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에서는 나를 부를 때 내 이름만 불렀지 '환자'라고 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내가 임신이 된다면 '산모'라고 부르겠지만, 그전까지는 나를 호명할 명칭이 없다.
아무래도, 잉태를 자연적으로 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나에겐 낯설고 달갑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내 나이를 분명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는데도, 감정적으로 좀 서운하게 느껴진다.
드디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했는데, 다음 단계인 '임신'으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나를 좀 슬프게 한다.
마치 문턱 앞에서 헛바퀴 돌며 윙윙 대는 로봇청소기처럼,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나의 한계를 느낀다.
그러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온 해방클럽의 강령을 생각해 낸다.
1. 행복한 척하지 않는다.
2. 불행한 척하지 않는다.
3. 정직하게 본다.
난임은 신체에서 오는 지극히 정상적인 결과이니까, 내 희망과 기대가 벌써부터 좌절된 것처럼 자기 연민에 빠질 필요도 없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불행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자.
나의 최선은,
스트레스는 최소한으로 받고
대범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수동적으로 해나가는 것.
그렇게 단계적으로 해나가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 결과 또한 나를 완전하게 행복하게 한다든가 나를 완전하게 불행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가끔은 그 결과 덕에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왔다 갔다 하는 인생일 거니까.
그때에도 내 인생을 정직하게 봐야겠지.
그러니 벌써부터 난임으로 인한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단정 지을 필요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