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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며느리

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by 기맹드

종갓집에 시집가지만 않으면 내 인생에서 제사 노동을 무조건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지금 어떤가. 나는 종손 며느리도 아닌데 1년에 네 번이나 제사상을 차리고 있다.

어이가 없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잘못하지 않았다.

시집은 어찌어찌 가긴 했는데, 제사 피하는 데에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작은 노여움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역시 삶에 '절대'라는 건 없구나.


나는 왜 피할 수 없었을까.

혹시나 스불재는 아닐까.

조상님을 소중히 여기는 집안 문화를 가진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나는 2인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고, '주양육자=남편' 공식에 이미 합의를 이룰 만큼 나는 선진적으로 이 가정을 이끌고 있는데,

'나는 당신의 엄마를 대신한 여자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신혼 초반에 한 사람인데.


왜 내가 뜨거운 기름 맞아가며 부친 육전이 남의 입에 먼저 호로록 들어가는 꼴을 추운 부엌 구석에서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왜 내가 차린 제사상 앞에 나설 수 있는 자격은 얻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고양이처럼 숨죽이고 기다려야 하는가.

왜 만들고 차리고 물리고 설거지하는 이 모든 과정에 남자들은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제사 지속 여부에 대한 의사결정은 오롯이 그들이 하는가.


제사 지내지 않는 날에는 괜찮다가도, 제사 지내는 당일에 심히 가부장적인 모습을 목도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딴지걸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끓어오른다.

밥그릇 국그릇 하나 옮기지 않는 남자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10년 넘게 이어진 제사노동에 이렇다 할 개선을 이루지 못한 며느리들은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건조한 웃음을 짓는다.

그들을 보며 불안한 미소를 보이는 젊은 내가 있다.


찬 부엌 바닥에 앉아 동태전을 옮기고 있는 엄마에게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는 10살짜리 아들이 있다.

제사가 벌써부터 지겨운지 방안 구석에서 핸드폰 하는 13살짜리 딸이 있다.


허리가 90도로 구부정한 큰어머님과 손가락이 휜 어머님이 탕국을 뜨고 밥을 푸는데

어떤 남자도 돕지 않는다는 것이 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조상보다
눈에 보이는 내 엄마가 덜 소중한 걸까.


내가 이렇게 입 밖으로 얘기를 꺼내면 우리 신랑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기야, 나는 그래도 자기 돕잖아.

밥은 같이 못 먹지만 밥 먹는 동안 내가 옆에 있잖아.

그리고 제사 서서히 없어질 거야. 걱정 마"


'남자들은 제사노동 안 하는 대신 벌초하잖아~'라며 맞받아치는 소리 안 하는 신랑에게 내가 과연 고마워할까.


그럴 리 없다.

나는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싫어! 개똥이다!"




첫제사 땐 송편 빚는 게 재밌어서 대학 새내기마냥 사진도 찍어댔고, 두 번째 제사 땐 다른 며느리들보다 늦어 눈치 보며 손 보태느라 정신없었고, 세 번째 제사 땐 이 집 오래된 며느리인 엄니와 큰 엄니가 안쓰럽게 여겨졌고, 네 번째 제사 땐 '이놈의 제사 어서 없앴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불경스럽지만 생겨나버렸다.


첫 제사 때 찍은 송편 빚기 사진


이토록 제사가 무용한 악습으로 여겨지다가도, 막상 얘기를 들어보면 제사의 순기능은 있는 모양이다.

우리 신랑은 제사를 빌어, 할머니에게 마음속으로 안부도 전하고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기억이 너무 좋기에, 감사한 마음을 할머니 기일에나마 꼭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어떠실까. 아버님은 '나 죽으면 안 해도 돼.'라고 하신다.

제사는 안 하더라도 사촌 형제들 간 끈끈함은 이어지길 바라신다.

당신께서 바라는 그 끈끈함은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혈육의 개념을 상실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제사'의 형태가 아닐까...


가장 고생하시는 우리 엄니와 큰 엄니는 정작

제사에 대해 별 생각이 없으신 것 같다.

몇십 년 동안 해왔기에 문제의식 갖기를 포기하시고 '결국 자식에게 덕이 갈 것'이라며 합리화 해 오신 것 같다.

하지만 이 힘든 걸 며느리에게는 절대 물려주기 싫다고 아버님께 강경하게 말씀하셨다.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

혼자 살겠다고 제사 불참을 선언하고 제사 노동을 일절 거부하고 남편을 혼자 보내는 며느리 궐위 시전 하면 어떻게 될까.

남자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똑같이 제사를 지낼 것이다.

나를 제외한 4명의 며느리들은 '지만 생각 있지'라는 핀잔'그래 너라도 오지 마라'는 지지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나를 '특이한 여자'로 여겨 멀리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나에게 없다.

우리 신랑에게도 아직 없는 것 같다.

10년 뒤, 제사상을 차리고 물리는 과정을 내 아이들이 보고 있다가 나에게 묻는 상상을 한다.


"엄마, 왜 여자만 해?"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벌써부터 마음이 복잡하다.


아이가 자라 의구심을 갖기 전에, 남자들도 제사 노동에 참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하니, 어서 조상님들이 하늘나라에서 합의를 보시어, 제사가 축소되길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일 것 같다.


조상님들.

추석 때 다들 한 번에 오셔서

많이 잡숫고 가세요.


벌초 전에 절 올리는 남자들.벌초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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