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난 참 운동신경이 없는 편이다. 눈썰미가 좋으면 남들 하는 거 관찰하면서 흉내라도 낼 텐데, 좀 고지식하고 이해력이 달린다. 거기다 잘 다치기까지 한다. 발목에 무릎에 허리에, 정형외과 도수치료만 백번은 받아봤을 것이다. 운동 능력도 모두 유전이라고 하던데, 내 조상님 중에는 분명 체육특기자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
근데도 나는 참 용감하고 도전의식이 많은 사람이라, 다양한 운동을 저질러 보았다.
겁이 없어서 '될까?'라는 생각보다 '되겠지 뭐!'라며 무턱 대놓고 시작하기 일쑤다. 나이가 들면서 좀 나아졌지만 20대와 30대엔 참 심했다.
그래서 쌓아온 레저 스포츠 경험이 겨울엔 스키, 여름엔 수상스키, 하늘에선 패러글라이딩, 바다에선 스킨스쿠버, 산에서는 등산까지 참 다양하다. 아참, 농구도 배워봤다.
내가 번 돈 중 삼분의 일이 '아이템 구입'과 '부상 치료'에 쓰인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 때 바디프로필을 한 번 찍었었는데, 그 이후 한 달 만에 48kg에서 61kg까지 요요가 왔었다. 바디프로필 찍을 때는 '겉멋'을 위해 운동을 했고, 요요가 온 뒤에는 '진짜 건강'을 위해 운동을 했다.
열심히 달렸다. 무릎이 아플 때마다 내가 언젠가 흉봤을지도 모르는 거대한 체구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분명 그들 나름대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겠구나, 미안합니다.' 하며 마음으로 사죄했다.
마흔에 가까워지자, 야근을 할 때마다 체력이 달렸고, 그럴수록 운동에 더 시간을 쏟았다. 결혼 후에는 '정신력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을 더 믿게 되었다. 몸이 피곤하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고 신랑과 사소한 신경전이 곧잘 다툼으로 번지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짜증이 늘면 '아, 내가 몸이 피곤한가 보다'라고 인지하게 된다.
운동하는 게 이롭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해도, 헬스장에 가는 게 참 어렵다. 10kg 원판 드는 것보다 힘든 게 헬스장 '가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걸 해내면, 일단 헬스장에 들어가면, 뭘 하든 하나는 제대로 하고 나오게 된다.
핸드폰만 노상 하더라도, 러닝머신 위에서 걷거나 사이클을 타게 되는 것이다.
템포 빠른 노래가 끊임없이 재생되는 세상, 사람들은 땀 흘리며 숨소리만 낼뿐이지만, 관중 없이 맹렬하고 치열한 1인 경기가 이루어지는 곳.
이상하게 온몸의 에너지가 탈탈 털리고 나서야 비로소 기쁨과 충만감으로 가득 채워지는 이 모순의 세상.
늘 앉아있는, 그래서 이제 그만 바다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거북이들은 필라테스를 권유받기도 한다. 마흔한 살 먹은 거북이인 나도 필라테스를 하며 웨이트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속근육과 자세 정렬 같은 것을 기대했었다. 웨이트는 부담되고 유산소는 귀찮을 때, 필라테스를 하며 '운동 거른 죄책감을 커버해야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흡사 군대 조교같은 강력한 강사님을 만날라치면, 갓 태어난 아기기린처럼 허우적대며 집에 돌아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거북이들은 늘상 구부정한 자세 탓에 코어 힘이 약할 수밖에 없고, 필라테스의 어떤 자세도 코어 없이는 유려하고 우아하게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러닝은 또 어떤가.
대세 중의 대세 러닝은 진입장벽이 낮고 조건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나도 참 애정하는 운동이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를 업으로 삼으면서 러닝을 하기 시작했고, 러닝이 '소설가 하루키'와 '인간 하루키'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체성 보존의 수단이라고 했다.
나는 아직 그 반열까지 오르지는 못한 초짜 러너이지만, 최근에 신랑과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나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혼자 뛰는 게 기록은 좋지만,
함께 뛰니 확실히 덜 힘들다는 것.
사는 동안 하프마라톤 정도는 한번 나가보고 싶은데, 20대처럼 무모하게 지르지는 못하겠고, 꾸준히 뛰다 보면 어느새 실력이 올라와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정말 내 바람이 이루어질지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세상 일이 원래 그렇다고 한다.
나이 들어 보니 내 뜻대로 되는 게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다.
그래서 운동이 좋다.
내가 마음먹은 만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것들 중에 하나니까.
운동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Input을 넣으면 그만큼 Output이 나온다.
'이렇게 힘든 게, 정말 맞는 거야?' 할 정도로 오히려 스트레스받으며 운동할 때도 있다.
하지만 끝나고 나면 스트레스는 커녕 온전히 행복감과 성취감만 남는다.
"오늘도 해냈다" 외칠 수 있는 단순하고 명료한 그것.
거지 같은 사람을 만났어도, 거지 같은 오늘 하루를 보냈어도,
운동만 제대로 해냈으면 당신은 거의 다 해낸 거다.
그러니 오늘도 득근하자.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