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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맹드 Mar 23. 2023

주방 - 상부장을 없앤 신의 한 수

신축보다 구축 올수리(3)

    30년 된 아파트의 주방은 거 후에도 여전히 다.

'지니의 요술램프도 아니고...

이곳에 냉장고, 인덕션, 식기세척기, 수납장이 다 들어갈까?'

무리였다.

'가전은 점점 커지고 많아지는데...
구축아파트 주방은 참 좁구나.'

그렇다고 주방을 테트리스 쌓듯 빽빽하게 채우긴 싫었다.

어렵겠지만 '개방감'을 얻고 싶었다.

지니에게 소원 빌 듯, 업체에 고백했다.


'주방 상부장을 없애고, 탁 트인 느낌을 주고 싶어요.'

 

안 그래도 집 전체적으로 수납공간은 부족한데, 상부장까지 없애겠다고 하니, 아마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내 고집인지 소신인지 모르겠지만, 집을 각 구역의 목적에 맞도록 쓰고 싶었다.

침실은 잠만 자는 곳, 옷방은 옷과 이불만 보관하는 곳으로 말이다.

손님방이 활용도가 적다고 해서 창고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베란다 보관용 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방에 수납공간을 만들어 보관해야 했다.


업체가 제시한 해결책은,

'하부장을 아주 널찍하고 크게 만들기'였다.

하부장은 바퀴가 달린 슬라이딩 서랍 형태로, 한 칸 당 75~90cm의 길이로 장을 짰다.

그 결과, 주방에 두 개의 하부장이 생겼다.
오른쪽 벽 따라 이어지는 3m 아일랜드,
왼쪽은 싱크대와 인덕션으로 이어지는 하부장.

오른쪽 아일랜드는 8개의 서랍으로 분할했다.

2개의 개방 서랍에는 오븐과 전기포트를 두었고,

6개의 폐쇄형 서랍에는 청소, 베이킹 등 목적 별로 구분해 두었다.


왼쪽 하부장은 길이 90cm의 아래위 서랍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칸에 실온보관용 요리재료들, 위칸에는 그릇과 조리도구들이 보관돼 있다.


주방의 여백을 돋보이게 할 자재를 골라야 했다.

마음은 세라믹이었지만, 텅장을 고려해 가장 무난한 인조 대리석으로 결정했다.


개수대

     그 결과, 여백의 미를 자랑하는 하얀 주방이 되었다. 상부장이 제거된 자리에 광택 있는 벽이 자리했다.

햇빛은 들어오지 않지만, 벽에 반사된 조명이 공간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주방에 들어서면, 하얀 도화지를 마주한 기분이 든다.

마구 칠하고 싶은 반항심으로 요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생기를 되찾는다.


상부장이 없어도 수납공간은 충분하다.

하부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물건들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설레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습관이 잘 자리 잡았다.


비우니 되려 여유로워졌다.

주방의 상부장을 없애겠다는 내 무리수는 그렇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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