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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맹드 Mar 23. 2023

베이킹 장벽

1인 가구의 보통날(1/3)

빵냄새가 좋았다.
버터 앞에서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처음 갖게 된 주방을 빵냄새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이사 온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베이킹이 얼마나 높은 장벽인지 모른 채, 장비를 하나둘 사모으기 시작했다.

당근마켓에서 판 것보다 산 것이 많았던 시기다. 천진난만하게 신입티를 팍팍 내면 판매자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해 주었다.

'꼭 성공하세요'


뭐든 장비빨이겠지만, 베이킹은 특히 더 그렇다. 기존 주방도구들은 힘을 쓰지 못한다.

마치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기분이다.



     베이킹은 비싼 취미다. 냉파는 어림도 없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 써서 적당히 맛을 내겠다는 타협은 통하지 않는다.

투입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여지없이 실패한다.

온도, 계량, 공기주입량 같은 변수가 레시피대로 투입되어야 한다. 운이나 손맛 같은 건 없다.


     변수 중의 최고는 기온인 것 같다. 베이킹도 계절을 탄다. 호르몬 있는 나보다 더 탄다.

더운 여름엔 반드시 얼음 꺼낼 일이 생긴다. 버터가 잘 녹지 않는 겨울엔 태운 버터 레시피만 찾아다니기도 한다.

'빵이 비싼 건 다 이유가 있어.'


그렇게 조심스럽게 반죽을 만든다고, 끝난 게 아니다. 빵의 최종 운명은 오븐에서 결정된다.

휴지 된 반죽이 좋은 온도를 만나야만, 눈앞에서 베이킹 장벽이 허물어진다.


꼭 성공의 모습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오븐멍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반죽 노동을 끝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30분짜리  같.


나의 첫 에그타르트

     오피스텔 시절, 주말이면 집 밖으로 나가기 바빴다.

이사 온 뒤, 주말 중 하루는 오븐과 논다. 베이킹은 집안에서도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멋진 신세계다.

인과관계가 명확해서 지적인 호기심도 충족된다. 심심할 겨를이 없다.

오늘 실패한 덕에, 내일은 성공할 거야


실패의 레시피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따라한 것은 분명 성공의 레시피다. 그래서 나는 오늘 실패했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일의 성공을 만들기 위해
오늘 내가 할 일이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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