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가끔 본다.
독서인간의 주변을 관찰하며 가설을 세우고 패턴을 찾고, 그게 실제로 맞아떨어질 때 소소한 재미를 느낀다.
앉아서 책 보는 사람들 중에 좀 젊은 사람들은, 내가 발견한 대다수가 북커버를 씌우고 있었다. 책 제목이 타인들에게 들킬까봐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 짓기엔 무리지만, 만약 그렇다면,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조차 '어떤 책을 읽는지'를 굳이 들키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서서 책 보는 사람은 옆사람에게 '배려해야 할 지성인'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올 때 균형을 잃지 않도록 손잡이를 잡아야 할 순간에도, 자신이 하차하기 위해 앞에 서있는 독서인간에게 양해를 구할 때도 훨씬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저 독서인간만은 덜 방해하겠다는 의지가 없이는 절대 닿지 못할 위치의 손잡이를 택하거나, 고개를 빼 좌우로 하차 경로를 탐색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그 덕에 독서인간의 책은 흔들리지 않고, 시선은 책에 고정된다.
나 같은 경우, 사람이 북적이는 서울 지하철에서 책을 꺼내 읽기까지 고민과 선택을 한번 거친다.
핸드폰 보는 게 쉽지, 책 보기는 아무래도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꺼내? 말어?..'
'고작 세 정거장인데 뭐'
'사람 많은데 뭐'
출퇴근 때 기차를 타는 기차인간이기도 한 나는, 좌석이 정해져 있는 기차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훨씬 편하게 느껴진다.
좌석별 경계가 명확하기에, 어깨너비 정도 되도록 팔을 벌려 신문을 보는 것이 도를 넘는 배려를 요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하지만 지하철은 뭐랄까, 기차에 비해 개방감이 강해서 그런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책과 책 읽는 나를 자랑하기에 아주 좋다.
게다가 출퇴근시간 사람들까지 많아지면 독서인간이 모험가처럼 느껴진다.
가파르게 하강하는
후룸라이드 위에서
평온한 표정을 짓는 사람처럼.
모든 책이 한 손에 잡히는 규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양장본으로 되어 무겁거나, 동화책처럼 얇지만 폭이 넓은 책도 있다. 무거운 책은 본인이 고생이지만, 폭이 넓은 책은 옆사람이 고생이다.
그런 책을 지하철에서 읽겠다고 가방에 넣어 오는 독서인간은 없을 것이다(라고 쓰고 나도 한번 되돌아본다.)
만약에 당신이 지하철을 타다가 독서인간을 맞닥뜨렸다면, 그 인간에 대해 몇 개의 사실을 상기해 주길 바란다.
1. 북커버를 씌웠다고 제목을 들키기 싫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반대로, 북커버를 씌우지 않았다고 제목을 과감히 내보이고 싶은 것도 아닐 수 있다.
2. 그 사람은 그 책만 읽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보기 쉽고 덜 방해되는 책이라 고르고 고른 책이 그 책이다.
3. 독서인간도 핸드폰 하기를 좋아한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오는 월요일에도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것이다.
수서역에서 강남역까지 가는데 무엇을 할지 책, 핸드폰, 멍 때리기 셋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 시간 나는 무엇을 원할까.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