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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욕망(1)

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by 기맹드

누가 보면 내가 프리랜서인 줄 알 것이다. 볕이 좋은 동네 카페에 때 되면 나타나, 남들 퇴근할 시간까지 창가 좌석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복장은 또 헬스장에서 갓 뛰쳐나온 것 같은 옷차림 아니면 맨발 슬리퍼에 헐랭한 츄리닝 바람이다.


사실은 아무도 나의 일상에 관심이 없다. 내가 프리랜서이든 직장인이든, 그저 지나가는 타인일 뿐, 내 일상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이다.

2년 전, 운칠기삼이 통했는지 평생장기계약된 용역이 하나 있다.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좀 특수한 용역이었는데, 바로 1:1 성인과외다.

처음에는 1년, 그러다가 2년을 하게 되었고, 2년을 채우자 용역 발주처는 나에게 '학생의 평생 파트너'가 되어달라며 부탁했다. 가정을 이룰 정도로 다 큰 어른도 부모에겐 마냥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쓰이는 법인가 보다.

그 이후로 나는 부자이기 이전에 결국은 부모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편견 대신 이해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 내가 프리랜서 같은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성인과외로 인해 주 2~3회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자연발생되었기 때문이다.

아, 참고로 이 성인과외는 현재 zoom을 통해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과외를 마치는 지점과 사무실이 지리적으로 가깝다면, 조직의 형평성을 중시하는 고용주로부터 출근 압박을 받아 결국 출근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엄연히 충청도에 거주할 뿐만 아니라, 특수한 용역을 잘 수행해 평생계약까지 맺은 나의 성과를 인정하고 나의 노고를 존중해주고 싶다는 고용주의 센스가 작용한 결과, 내 고용주는 '알아서 하라'며 묵시적으로 나에게 자유의지를 허용하였다.


KakaoTalk_20250507_165554176.jpg 카페 외부좌석


그 덕에 나는 주 2회, 프리랜서 같은 일상을 보낸다.

특히 지금처럼 평화로운 날씨일 때는 그 일상의 감사함이 배가되는 것 같다.

겨울에는 출근을 하든 하지않든 딱 죽을 것 같더라니.

해도 길어지고 바람은 선선하게, 햇살은 뜨겁지 않게 골디락스의 온도로 하루가 채워지니 이것만큼 나에게 좋은 약도 없다. 자연 소염제이고 천연 항생제이다.




내가 디지털 노마드족이 되면, 내가 프리랜서가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독서와 글쓰기다.

자기 전 읽는 책 말고, 자연광을 조명삼아 책에 내려앉은 먼지마저 애틋해하며 책을 읽는 것.

잘돼도 그만, 잘 안 돼도 그만인 고객사에게 보낼 보고서 말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

그 두 가지를 통해 나는 비로소 나다워질 수 있고, 나로서 살아간다고 보았다.


내가 글쓰기를 욕망하는 이유는 글쎄, 단정 지어 어떤 이유들을 나열할 수는 없다.

대신 명확하게 느끼는 것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칭찬은 "글 잘 쓴다"이다.

예쁘다, 똑똑하다, 성격 좋다, 일 잘한다 이런 칭찬 말고 - 당연히 고맙고 감사하지만, 좀 까다롭게 굴자면 - 나는 글 잘 쓴다는 칭찬이 어릴 때부터 가장 듣기 좋았다.


글에는 내가 묻어난다.

즉, 글이 곧 나이다.

내가 글 하나, 문장 하나로 정의될 수는 없다.

나는 글이 아니지만, 그 글은 나의 일부이다.

그래서 그 글을 칭찬하면 '네. 당신은 당신의 귀한 시간을 들여 나를 읽어냈군요.'라고 의역되어 나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나는 작가나 작가 비슷한 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하고잡이'었던 나는 글 말고도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고, 다양한 취미생활과 다양한 업력을 거쳐 지금에야 이르렀다.

내가 예상한 경로는 아니지만, 어쨌든 40대에 주 2회 프리랜서 일상을 획득하였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글쓰기가 망설여진다.

지금 이렇게 글을 써 서랍에 묵혀두지 않고 발행하는 것은 40일 만이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글을 쓰고 싶은 욕망'에 매일 사로잡혀있던 나로서는 그 40일이 참 찌뿌둥하고 찝찝한 기간이었다. 마치 쾌변 한 지 오래된 변비 환자처럼...


글 쓰는 걸 좋아했고 글에 대한 칭찬을 가장 좋아하고 글 쓰는 시간을 가장 나답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글을 자주 써내지 못하는 건 왜일까?


KakaoTalk_20250507_165418557.jpg 최은영 작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에 <몫>


결국은 '잘' 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대충, 되는대로 쓰는 걸 싫어하고 그런 글은 '낭비'이자 '쓰레기'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게 뭐 얼마나 많다고, 그렇게 자신을 검열하는 것일까.


도자기 굽는 노인처럼,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그렇게 장인정신을 가지고 글을 대할까.


남들이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는 참 글을 잘 쓴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 하나 보태지 않아도 세상에는 충분히 좋은 글들이 넘쳐난다고.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그래도 아무도 봐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만의 쾌변을 하고 싶다.

나는 아니까. 그 기분을.

시원하고 그 상쾌하고 짜릿한 기분을.


억지로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스스로 멱살을 잡고 하드캐리해야 방구라도 발산할 것 같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된다는 말-은 우리 신랑으로부터 배웠다-을 믿어보련다.

마음에 쏙 드는 글이 아니더라도, 주 1회 꼭 글을 써보려고 한다.

마치 내가 나에게 청탁한 원고처럼.

원고료는 후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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