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고운 내 사랑
3월 둘째 주에 아빠가 서울에 올라오셨다.
퇴직 후 아빠의 첫 서울상경,
약속을 잡을 때 아빠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응~ 그날, 아빠 서울 올라오는데 시간 되냐~
아빠 만나러 올 거냐?"라고.
마치, 첫 데이트를 신청하듯 아빠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빠 당연하죠~ 퇴근하고 저녁 먹어요~ 7시에"
약속을 잡고 나서도 아빠는 혹시 몰라
'금요일 7시, 약속 잊지 말고
고속터미널 역에서 꼭 만나!'
라고 카톡을 남기셨다.
약속 당일,
아침 9시부터 카톡이 '띠링띠링'하고 울렸다.
아빠는 서울에 도착했고, 도착해서 뭘 드셨고,
여의도 역을 가고 있는 중이다 등
하나하나 보고 하시듯 카톡을 남기셨다.
카톡 한 마디 한 마디에
잔뜩 들뜨신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퇴근 후, 아빠를 뵈러 갔다.
아빠는 하필 퇴근시간에
9호선을 타셔서 멀미를 하셨다고 한다.
멀미약을 사들고 아빠에게 갔다.
동생과 앉아 있는 아빠의 모습.
약을 드시고 10분 정도 있으시더니
"그래도 딸이 사다 준 약 먹고 나니
훨씬 낫네"라고 하셨다.
음식점 아빠는 계속 웃으셨다.
계속 웃으시고 너무 좋다는 말을 하셨다.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다며 계속 사진을 찍으셨다.
음식을 고를 때도,
먹고 싶은 거 배부르게 먹고 가라며
더 시키라고 하셨다.
환히 웃으시면서, 들뜨신 아빠.
너그럽게 먹고 싶은 건 다 고르라고 하시는 아빠.
'좋다 ‘
‘뿌듯하다’
‘너희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고 하시는 아빠.
아빠는 주로 부정적이고 걱정이 많으셨던
모습을 보이셨는데
아빠의 이런 모습이 처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고속터미널 역 - 신세계 백화점 쪽을 한 바퀴 돌았다.
아빠는 30대 초반
서울에 잠깐 살았던 때가 그립다고 하셨다.
"서울이 좋았지만, 가족들이 다 밑에 있으니 어떻게 나만 서울에 사냐"
"좋은 건 좋은 거지만, 가족만 생각하면 당장 내려오고 싶었다"라고 하셨다.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다가
내가 계속 말을 하다가 잠깐 말을 멈췄다.
(동생이 말 수가 적어서...)
내가 진행자 급으로 말을 하고
아빠한테 질문을 했는데
나도 좀 지쳤나 보다.
내가 잠시 말을 하지 않자
아빠가 쓰윽~ 눈치를 보시며
"가고 싶으면 가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억지로 앉아있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아빠, 그런 게 아니고, 저도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동생도 입꾹 다물고 있는데
저도 회사 바로 마치고 와서,
계속 말하는 게 조금은 힘드니까. “
“그래도 제가 말해야, 분위기도 살고
어떤 자식이 아빠가 서울까지 오셨는데
집에 가고 싶어 하겠어요~“
라고 말하자
아빠가 안도하시듯
"너도 노력하는 거냐"라고 하셨다.
아빠가 내려가실 시간이 다가오고 배웅해 드렸다.
요즘은 버스탈 때 어플로 예매하면
핸드폰으로 티켓을 찍을 수 있다.
근데 아빠는 꾸깃꾸깃한 A4용지를 보여주시면서
"이게 티켓이다"라고 하셨다.
그 종이를 꽉 쥐시고,
버스를 타러 걸어가시는 뒷모습이
또 나를 울렸다.
씩씩하게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빠가 ‘장하다’라고 생각도 들었다.
다음엔, 서울 올라오실 때 예매는 내가 해드려야겠다..
취업하고 나서 아빠는
"바비야, 힘들고 기죽어도
씩씩하고 성실하게만 살아라"라고 하셨는데
우리 아빠가 씩씩하고 성실하게 살고 계셨다.
자식이 부모를 보고 ‘장하다’고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