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을 그리워하며
삼촌은 자주 일을 시켰다. 벌레 잡는 바깥일 말고도, 집안일들. 처음에는 화단에 물 주기, 설거지 같은 잔일거리였으나, 점점 잡초 뽑기, 트럭 세차처럼 일이 커지더니 어느 날은 갑자기 5년 동안이나 방치하던 창고 대정리를 하자며 나를 불렀다. 그 날은 꼬박 여섯 시간 동안이나 먼지를 먹고선 다음 날 몸져 누웠다. 삼촌이 방 값을 이렇게 받으실 모양인가 보다. 그런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쁜 생각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그와의 대화에서 나온 나의 특기들은 모두 주문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피아노를 좀 친다는 말에 찬송을 연주해보라고, 그림을 그린다는 말에 앉아서 삼촌이랑 숙모를 좀 그려보라고, DSLR을 들고다니는 걸 보시더니 지인의 결혼식 촬영기사로 불려가기도 했다. 디자인 전공 경험을 살려 해충 방제 사업의 홈페이지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고선 이젠 나도 모르겠다-하며 2주 동안 손 놓고 게으름 피웠다.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삼촌이 한 마디 했다. “그 동안 이만큼 했나?” 점점 솟아오르던 마음의 가시들 중 하나가 툭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삼촌, 이거 원래 돈 많이 받고 하는 작업이에요.” 말실수다. 문자 그대로 비싸게 구는 조카의 날카로운 말에, 그는 “맞나”하고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방으로 돌아가셨다. 한 주가 더 지나서 어찌저찌 홈페이지는 런칭을 했고 삼촌은 참 좋아해주셨지만, 나는 내가 했던 가시 돋힌 말이 계속 입 안에 남아, 꼭 혀 끝에 난 혓바늘처럼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쿡쿡 마음을 찔렸다. 그 이후 그가 나에게 무언가 부탁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미국생활의 3분의 2 지점 쯤이었나, 그 곳에서 만난 친구와 샌 디에고에 놀러갔다가 발을 크게 접질렀다. 왕발이 되어 절뚝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방에 바보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데, 또 벌컥 들어오시더니 한참 내 발을 바라보다가 “내일 한의원엘 가자” 하곤 나가신다. “아마 한 달은 못 걸을 거예요” 의사는 목발과 4주 움직임 금지를 처방했다. 목발 없이는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100일 밖에 못 있는 미국에서 한 달을 누워있어야 하다니, 이젠 반강제적으로 일도 할 수 없고 게으를 수 밖에 없었다.
우울했다. 미국에서의 하루 일과라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길거리 소음을 듣고, 그러다가 삼촌이 차로 한의원에 태워주면 발에 침을 한 다발 꽂은 채로 다시 병원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길거리 소음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2~3주 반복했을 때였나, 그 날도 어김없이 병원 천장을 보고 있는데 저만치 가만히 앉아있는 삼촌이 보였다. 문득 신기했다. 저 바쁘신 분이 저렇게 가만히 계시네. 심심하진 않으실까, 무슨 말을 붙여보려다, 어른과의 대화를 어색해 하는 성격 탓에 관뒀다. 가만히 누워서 한참 삼촌을 봤다. 그제서야 나랑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삼촌이 보였다.
삼촌은 그렇게 지금처럼 가만히 나랑 뭐든지 하고 싶었던 거였다. 자식이 없으셨기에 다 커버린 조카가 더 어색했던 삼촌, 그에게 ‘일’이라는 건 방값을 대신할 인건비나 업무 효율을 높일 전략 같은 게 아니었다.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소재이자 조카와 놀아주는 방법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함께 2인 1조로 벌레를 잡고, 결혼식에 가고, 현지 직장 동료들을 만나고, 브랜드를 꾸미고, 그가 시킨 모든 일들은 삼촌과의 추억으로 남았다. 생각해보면 어떤 친척과도 그렇게 서로 땀을 흘리며 붙어 있은 적 없었다. 단 100일 간 이곳에 머무른 조카를 위해 특별한 경험을 함께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덕분에 미국에서의 생활은 다채로운 로컬 라이프 장면들로, 지금도 내 안에 가득하다.
그러니까 '비싼 작업’이라고,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내내 미국의 풍경 그림을 그리러 다녔다면 한 장 쯤은 삼촌 가족을 그려 드렸어야 했다. 그 좋아하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 한 곡 쯤은 연습해 들려드렸어야 했다. 한의원 침 맞는 시간 만큼이나 길고 심심한 시간을 나를 위해 가만히 사용했던 삼촌. 어딜 가든 ‘마이 네퓨, 마이 네퓨'하시며 매 스케줄마다 나를 챙겨 넣던 그였다. 그의 부탁을 대부분 귀치 않아했던 나와 달리, 그는 항상 귀한 것들을 공유하고 싶어했다. 나는 그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온 맘 다해 귀한 손님이었다.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