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게 그리는 연습

안 닮아도 괜찮아

by 김보

"로 안 닮았데?"

그 말이 참 싫었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나는 학교 쉬는 시간에 자주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러면 애들이 매점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에 슬며시 와 구경을 했는데, 개중 꼭 저런 말을 하던 애들이 있었다. 피드백 주는 클라이언트처럼, 뒤에서 야야 하나도 안 닮았다는 둥, 얼굴이 이상하게 생겼다는 둥 지적을 하는 것이다. 그 말이 신경이 쓰였던 어린 나는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하고, 괜시리 지우개질을 더 세차게 하거나 선을 여러번 그어댔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강박적일 만큼 원본에 집착했다. 펜을 잡는 처음에는 그저 이 그림이 좋아서 종이에다 옮기고 싶은 즐거운 마음이었다가, 그리는 내내 원본과 수십번 대조하며 어디가 틀렸는지 검수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 드는 감정은 즐거움보단 안도다. 휴, 다행히 별로 안 틀렸다.


문제는 상상해서 그릴 때인데, 뭔가를 그리고 싶어 끄적대면 원본이 없는 상태로는 좀처럼 형태가 안 그려진다. 예를 들어 나무를 그린다 치면, 가장 최근에 그렸던 나무의 몇가지 선 터치 방법만 생각이 날 뿐, 그려보면 전혀 어설픈 형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고장 난 것처럼 손이 굳는다. 랩으로 치면 커버곡 라이브는 CD 씹어먹는 수준인데 프리스타일이 전혀 안되는 상태.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오랜 꿈인 일러스트레이터를 접었던 게.


원본에 집착하는 것은 비단 그림 뿐만은 아니었다. 공부법, 창법, 심지어 말투까지도. 스스로 하려다 어설퍼지는 게 두려워서 꼭 롤모델을 찾았다. 이미 성공한 무언가를 원본 그대로 따라 가다보면, 최소한 남들에게 욕은 안 먹을 그럴싸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마녀사냥을 보면서 신동엽의 센스와 말투를 따라했고, 윤종신의 노래를 한 달 내내 반복재생하며 숨소리 목소리까지 카피했다. 어느 정도 비슷해지고 그럴싸해지고 나면 나는 이만큼 성취했다보다는 이만큼 증명할 수 있다에 대해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뒤에 서서 그림을 쳐다보는 반친구들은 없으나 나는 여전히 초조하게 그들의 '그럴싸한데' 싸인만을 기다리고 있.


어찌저찌 미대에 입학하고서 꼬박 4시간을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단짝이었던 내 동기 J는 늘 눈 세 개 달린 다람쥐, 손발이 없이 떠다니는 요정 같은 것들을 즐겨 그려댔는데, 그녀의 그림은 항상 아무 때에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시작 되곤 했다. "뭐 그려?" "아무거나." 성의없는 대답이 아니라 정말 아무거나 그렸다. 이게 뭐냐고 물어도 뭔지 자기도 모른단다. 나는 4시간 내내 뽑아온 레퍼런스를 대조해가며 인물 정밀 묘사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 J의 그림을 봤을 때, 정말 묘한 감정을 느꼈다. 오밀조밀 그녀의 상상력과 오브제들이 모여 자유롭게 움직이는, 본 적 없던 공간이 그 곳에 있었다. 아무 레퍼런스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린거지. 질투였을까, 신기함이었을까. 내가 그렇게 목 메던 '그럴싸함'이 거기 있었다. 결과적으로 학점은 내가 더 높게 받았으나, 그 그림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J는 머릿속의 어떤 원본과 대조한 걸까? 어떻게 그렇게 고침 없이 막힘 없이 자유롭게 그린거지? 확실한 것은 그녀는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했고, 나는 아니었다는 것. 그 그림은 어떤 것과도 똑같지 않았기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J만의 것이었다.



사실 꼭 똑같지 않아도 괜찮다. 동그라미를 마흔 일곱 번 그려 그 중 가장 형태가 다른 동그라미를 보고, 그걸 찌그러진 동그라미라하지 네모나 세모라 말하겠느냐는 김창완의 말처럼, 간의 삶은 그렇게 다양한 모양의 동그라미들을 그리게끔 불완전하게 설계되어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왜곡과 각도의 틀어짐이 더욱 오래 시선을 머물게 하는 것처럼, 우리는 완벽함보다 그 사람만의 재해석이나 인간미 있는 실수를 통해 더욱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고 피카소처럼 매번 오하게 다름을 재해석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자신만의 그럴싸한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 정성스레 몇 도씩 기울여 선의 끝과 끝을 닿록 노력했다는 사실. 그 안에 이미 그 사람의 배울 점과 사랑할 점들이 충분히 있다.


나는 이제 틀리게 그리는 법을 연습한다. 꼭 원본의 모델과 안 닮으면 어떤가. 내가 라이언 고슬링을 떠올리며 그리고 칠한 선들이라면 이 그림은 라이언 고슬링이다. 회사 생활에서 대부분 어설프면 또 어떤가. 한 두번 그럴싸하게 해냈다면 그것도 성장이다. 틀리면 큰 일 난다고 썩같이 믿었던 것, 그 강박에서 벗어나는 연습. 뻔한 말이지만 틀림을 다름과 구별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나는 얼마나 많은 나만의 선과 색들을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지워왔을까. 밀묘사로 가득했던 내 인생에, 이젠 나만의 느낌대로 추상화를 채워넣을 때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로써 그럴싸해지고 싶다. 나의 틀림, 아니 다름도 즐겁게 자랑하고 싶다. "나다운 게 뭔데?" 자문에, 망설임없이 "나는 이렇게 생긴 동그라미야." 자답할 수 있도록.





keyword
이전 01화일희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