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채도가 너무 높아 그렇지 않니. 그런데 그건 다 그럴 수 밖에 없더라. 세상에 볼만한 건 너무 많고 더 강한 빛을 띄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색이라도 묻혀버리니까. 우리는 자극보다 더 큰 자극을 바라고 이미 한껏 익숙해져 있는 거야. 강렬하고 선명한 커다란 페인트통 같은 세상. 만지면 손에 묻을 것처럼 찐한. 머리가 다 어지러울 정도로.
오늘처럼 비오는 날에 풍경을 봐 좀 뿌얘. 하늘부터 허공 건물 색들까지. 신기하게도 채도가 참 차분해져. 근데 그거 다 자세히 보면 빗방울 한방울 한방울이거든. 그것들이 바닥을 때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니네 좀 조용히 해' 한순간에도 몇 억 몇 조 개의 빗방울이 그렇게 말한다고. 그럼 그게 어떤 함성처럼 와~하고 세상의 채도를 완전히 씻어내려 버리는거지. 그러면 바깥에 나와있던 어지러운 좌판들도 들뜬 사람들도 자랑하던 알록달록한 빛깔들도 심지어 화가 잔뜩 난 햇볕까지 다 집으로 들어가버리고 거리에는 허공같은 빈 차분함만 남아. 근데 말이야 나는 그게 참 좋아 채도가 떨어진 세상. 비가 좀 묻고 때때로 우울한 생각이 들어도 나는 비오는 날이 좋아 스산하게 낮게 부는 바람도 좋고 탁타닥 우산에 비맞는 소리도 좋고 바다의 파도소리같은 차가 물웅덩이 치는 소리도 좋아.
사실 되게 열심히 살았거든 이 선명한 세상에서. 더 눈에 띄기 위해서, 강한 빛을 내기 위해서, 저기 저 사람보다 더 찬란하고 싶어서, 쉬지도 않고 치열하게 싸웠네 참 날 시끄럽게도 다그쳤었네 무얼 위해서 여기까지 왔을까 채도가 낮은 세상도 그저 이렇게 좋은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