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주고 싶은 아이
(권정생 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2014)
강아지똥이 주인공입니다. 옆에 있던 흙덩이가 “넌 똥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개똥이야!”라고 놀리자, 더럽다는 말에 속상하고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립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거나 같이 놀리거나 무시하는 방법도 있는데, 눈물을 흘립니다. 2번 유형 아이들은 주변에서 자신을 어떤 이미지로 보는지에 대하여 민감합니다. 그래서 ‘더럽다’ 거나 ‘이기적’이라거나 ‘예의 없다’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면,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강아지똥이 울음을 터트리자, 옆에서 놀리던 흙덩이가 미안했는지 정답게 강아지똥을 달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군가가 울면 공감해주고 달래주는 아이들이 2번 유형입니다.
아마도 2번 유형은 흙, 즉 대지를 닮았나 봅니다. 흙덩이는 원래 산비탈 밭에서 곡식도 가꾸고 채소도 키웠지요. 그런데 지난여름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무척 심해서, 흙덩이가 키우던 아기 고추가 그만 죽고 말았어요. 그리고 그 아기 고추를 끝까지 살리지 못하고 죽게 해 버린 건 너무 나쁜 짓이고 벌을 받아서 달구지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2번 유형의 아이들은 부정적인 분위기를 감지하면, 자신이 무언가 실수를 했거나, 잘못을 해서 그런지 스스로를 탓하는 유형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죠.
다행히 소달구지 아저씨가 떨어뜨린 흙덩이를 발견하고 소중하게 다시 데려갑니다. 모든 아이들이 소중하게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나 2번 유형은 더욱 소중하게 다뤄주고 늘 아이의 존재에 대하여 감사하고 사랑하다는 표현을 자주 해주어야 합니다.
흙덩이가 떠나고, 홀로 남은 강아지똥은 쓸쓸하게 혼자서 중얼거립니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누군가 함께 있다가 혼자 훌쩍 떠나보내면 남은 자는 외롭죠. 속담에도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2번 유형 아이들은 이 느낌을 유독 강하게 지각합니다. 그래서 친구 곁에 있고 싶어서, 친구가 하는 것은 다 같이 하려고 하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바로 이 2번 유형을 위한 것이랍니다.
그렇게 혼자 남겨져서 외롭고 쓸쓸해하던 강아지똥은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민들레 싹을 만나지요. 강아지똥은 예쁜 꽃을 피운다고 하는 민들레 싹이 너무나 부러워 한숨이 나왔어요. 이렇게 부럽다고 바로 티를 내면서 “나는 그렇게 못하는데 너는 멋지구나”라고 부러워하는 것도 2번 유형 아이들의 특성입니다. 대체로 자존감이 낮아서 자신은 잘 못한다고 생각하고 잘하는 다른 사람을 보면 부럽다고 표현합니다. 그런 강아지똥에게 민들레가 말하죠.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이렇게 희생을 강요하는 거 정말 싫어하거든요. 내가 왜? 아니 도대체 왜 하필 나에게? 너를 위해서 내 몸을 녹이다니? 나는 싫다.‘ 이건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2번이 아니라서요. 그러나 2번 유형인 강아지똥은 자신의 희생으로 민들레가 별처럼 고운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에 감동합니다. 그렇게 희생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희생에 만족하죠. 2번 유형의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나 함께 하고 더 친해지고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라면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어쩌면 2번 유형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절대 선(善)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요.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 어둡고 추운 곳, 그러나 따뜻한 영혼이 있는 곳. 그곳에서 천사처럼 빛나는 존재들이 2번 유형입니다. 이처럼 2번 유형 아이가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면, 자신의 희생으로 봉사하며 이 세계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