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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주 비올라 Nov 03. 2022

2-6) 다시 글쓰기 2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름방학 과제로 글쓰기가 있었다. 먼 미래에 우주로 가는 내용의 단편 소설을 썼다. 방학 때 일기도 정말 재미있게 잘 썼다. 무척 잘 썼다고 정말 네가 쓴 게 맞냐는 담임 선생님의 의심이 기억난다. 나는 내가 쓴 게 맞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선생님은 교실 뒤에 전시해 주셨다. 담임 선생님의 의심에 가득 찬 표정을 보면서 나는 그만큼 내가 잘 썼다는 거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다시는 글을 쓰지는 않았다. 일기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그때의 일기와 글쓰기가 지금 있다면 좋겠다. 아들과 함께 보면서 엄마의 어린 시절 글쓰기에 대하여 추억을 나눌 수 있을 텐데, 없어서 아쉽다.


   기록을 남겨 두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을 20년 혹은 30년 후에 다시 보면 그때의 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가 보지 않더라도 나의 기록이 100년 혹은 1천 년 후의 후손들에게 남겨진다면 그건 이 시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꼭 좋은 글을 써야지만 기록하는 게 아니다. 나의 일상,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모든 것이 지금 이 시대 평범한 엄마들의 현실이다. 


   우리 전의 엄마세대에는 지금과 같은 불안이 없었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힘들고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된 듯 한 강박이 없었다. 우리 세대에 처음으로 완벽한 엄마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지금 이렇게나 육아라는 것 자체가 커다란 상품이 되어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아빠가 육아를 하는 경우가 전혀 없었다. 엄마도 육아라기 보단 살림을 했다. 우리는 그저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밥 먹을 때쯤 집에 갔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육아를 하려니,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주려니 엄마의 역할이 힘겹다. 그러니 계속 <독박육아>로 힘들다는 말을 하게 된다. 


   사토 도미오 <인생은 말하는 대로 된다>를 읽고 깨달았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을 나타낸다. 나의 생각이 말로 나타나고, 내가 하는 말은 나에게 다시 영향을 준다. 내가 자주 했던 그 '힘들다'라는 말이 결국 나에게 힘든 상황을 계속 불러왔던 것이다. ‘아이 때문에 힘들어.’라는 나의 말이 그런 현실을 계속 불러온 것이다. ‘남편이 남의 편이야’라는 나의 말이, 내 편이 안 되는 상황을 끌어온 것이다. ‘돈이 없어. 돈을 벌고 싶어’라는 나의 말 때문에 계속 통장의 돈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런 행복하지 않은 "말"의 반복은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든다. 삶에 있어서 나를 괴롭고, 불편하게 하는 "말"은 사실은 나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담아두면 속병이 날 듯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꺼내서 말을 하면 다시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상황은 반복된다. 왜냐하면 나의 “말”이니까. 내가 말하는 대로 그대로 계속 다시 반복된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말”대신 “글”로 써서 밖으로 보내면 더 이상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는 글로 써서 세상에 나오는 순간 나를 떠난다. 그러므로 내가 쓴 “글쓰기”는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렇게 나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로 가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그들의 이야기로 새롭게 창조된다. 그리고 나에게 반복되지 않는다. 아니 반복되더라도 더 이상 나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나는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불만들을 떠나보내기 위해 글을 썼다. 내편이 아닌 남(의) 편에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더욱 집중해서 나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나의 이야기를 떠나보내기 위해 글을 썼다. 


"가끔 멋진 일이 생기고 난 직후에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일들이 산맥으로 이어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일이 생긴 후에 되돌아보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p 359)


  계속 글을 쓰는 것을 반복하면,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바뀐다. 나는 불행하고 운이 없고 이기적인 엄마였다. 화내지 않겠다고 아이와 손가락 걸고 약속하고는 다음 날 바로 순간 욱해서 얼굴이 굳어버린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몰랐다. 


   나는 나의 과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고 커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대하여 반복해서 쓰면서 깨달았다. 


   글 속에서, 나는 아이를 위해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두려워서 어린 시절을 핑계 삼고 있는 자신을 마주했다. 지금 나의 현재 모습에 맞게 과거의 기억을 재배치하고 있었다. 사랑받았던 기억들을 미뤄두고, 상처받았던 순간들을 연속으로 나열하면서 나를 비천하고 가련한 주인공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나를 합리화하면서, 엄마 탓, 남편 탓으로 도망 다니는 나를 발견했다.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조금씩, 그 '상황'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나를 보게 되었다. 그 '상황'이 더 이상 나의 현재가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나의 '과거'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휘둘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글을 쓰면서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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