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자리 Apr 03. 2020

번역료 이야기

번역가 이야기


은유의 《출판하는 마음》을 읽다가 번역가 홍한별의 번역료 부분에서 눈이 멈췄다. 초기에 매당 2,500원을 받았고 5년마다 500원이 올랐으며 4,000원이 된 이후로는 더 올리기가 쉽지 않단다. 이것이 현실이구나 싶다. 새로운 번역가들의 진입으로 그것마저도 낮추려는 출판사들이 많다고.


나는 처음에 장당 13,000원으로 시작했으니 매당으로 치면 1,500원 수준일 것이다. 진짜 짠내 나는 단가다. 물론 실력도 많이 부족했으나 아무래도 너무 낮았던 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2년 전쯤 카페 홍보글을 보고 번역가 지원을 한 적이 있다. 장르소설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성심성의껏 샘플 번역을 했고 수정을 요청해서 두 번 정도 수정을 해서 보냈다. 이런 번역도 하려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라 마음 한구석에선 안 되었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샘플은 통과했는지 번역료 얘기가 나왔고(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왜 물어보지 않았나 후회가 된다), 생각보다 한참 낮은 번역료에 실망하고 말았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내심 잘 되었다 싶었지만 속상했다. 결코 쉽지 않은 텍스트였건만 그 정도 값어치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마음이 정말 안 좋았다.

 

장르소설 하는 번역가들은 다 이런 과정을 거쳤을까 아니면 아직도 그런 비용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에이전시도 아니고 출판사였던 거 같은데,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닌가. 난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나의 현재 몸값은 얼마나 될까? 내가 지금 받고 있는 번역료가 적정한 것일까? 대리, 과장 등의 직책이 없는 이 세계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온갖 생각과 물음으로 새하얀 밤을 보낸 날이었다. 


비만 번역료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번역료 지급시기도 큰 문제다. 에이전시와 일할 때에는 번역료 지급이 늦어진다. 보통 계약서에 최종 번역본을 보내고 3, 4개월 내에 입금이라 되어 있지만 1, 2개월 내에 지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진짜 마지막까지 버티다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번역을 3개월 동안 하고 또 4개월을 기다려야 돈을 받을 경우 반년이 넘는 시간을 계약금 몇십만 원만으로 버텨야 한다. 생계를 책임지기 쉽지 않은 구조다. 물론 1개월, 빠르면 2주 내에 지급을 완료하는 양심 있는 에이전시도 있기는 하다. 작년 초에 계약한 에이전시의 경우 최종 수정을 마친 뒤 거의 바로 번역료를 입금해 주었다.


출판사도 나름이겠지만 다행히 내가 거래한 출판사의 경우에는 거의 곧바로 잔금이 입금되었다. 한 번은 번역을 완료한 만큼 파일을 보내면 그에 맞게 정산해 바로바로 입금해준다는, 참으로 합리적인 사장님과 거래한 적도 있었다. 문제는 내가 일을 고르는 구조가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 의뢰를 하고, 금액도 거의 그쪽에서 제시하는 대로 받는다는 것. 을의 입장인 나는 아직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한 번은 처음 거래를 맺은 에이전시로부터 잔금을 입금받고 조금 놀란 적이 있다. 내가 계산했던 금액과 다소 차이가 있었던 것인데, 그 원인을 분석하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계약 당시 200자 기준으로 번역료를 산정한다기에 난 당연히 원고지 한 장을 말하는 줄 알았다(원고지 한 매에 200자가 들어간다). 그런데 계약서를 보니 매 당이 아닌 그냥 200자 기준이라고 되어 있었다. 계약서를 꼼꼼히 보지 않은 내 탓이었지만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그게 뭔 차이냐 할 수 있겠냐만은 최종 번역료 상으로는 크게 1/3 정도까지도 차이가 날 수 있다. 200자 기준으로 할 때는 총 글자 수(여백 포함)를 200으로 나누지만 한글 프로그램에서는 매수가 자동으로 계산되어 나온다. 그런데 그렇게 나눈 값과 한글 프로그램에서 자동으로 말해주는 값이 차이가 난다. 


에이전시 사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한글 프로그램에서는 한 단어를 쓰고 한 줄을 띄더라도 셈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라는데, 그 방식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출판사에서 그렇게는 계약을 안 하려고 한단다. 내가 그동안 계약한 사장님들과는 전부 한글 프로그램 기준으로 계약을 했기에 누구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번역가에게 조금이라도 덜 주려는 속셈처럼 느껴졌을 뿐.


다행히 그 후로 나의 의견이 반영이 된 것인지 이 에이전시에서도 매당 200자로 계약하는 것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했다. 나의 소심한 반항(?)이 제 몫을 한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흔들리는 낙엽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는 힘없는 번역가 신세이지만 우리 모두 조금만 더 목소리를 내었으면 좋겠다. 거절 메일을 받을지언정 조금은 몸값을 높여 불러보기도 하고(올해 몇 번 그런 용기를 낸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거절 메일을 받고 있지만 그 가운데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는 중이다), 조금 앓는 소리도 내보자고 나의 착하고 여린 동료들에게 속삭여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번역서가 나온 날을 기억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