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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pr 03. 2020

첫 번역서가 나온 날을 기억한다

번역가 이야기


첫 번역서가 나온 날을 기억한다. 


당시 살던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청량리 영풍문고에서 난 그 책을 발견했다. 번역한 책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며 네이버 검색 창에 계속해서 책 이름을 쳐보던 시절이었다. 에이전시로부터 출간 소식을 듣고 갔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점에서 처음 그 책을 보았을 때 나는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고도 차고 넘칠 만큼 호사로운 기분을 누렸다. 내가 직접 쓴 것도 아니었으면서. 내 책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표지에 찍힌 내 이름과 경력만 보였던 당시의 나에게는 그 책이 내 얼굴처럼 느껴졌다. 내 눈과 코와 입이 모두가 볼 수 있는 그곳에 전시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당시 내 옆에는 그 순수한 기쁨을 함께 나눌 엄마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싶다. 엄마 역시 나 만큼만이나 환하게 웃고 있었으므로. 엄마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었으므로.     


몇 년 전에 내가 번역한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엄마는 교보문고에서 그 책을 안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사진 속 엄마를 보니 그때가 생각났다.      


이래서 출판 번역을 할 수밖에 없다. 기술 번역만 하면 돈은 조금 더 벌지도 모르지만 엄마의 이토록 환한 웃음은 볼 수 없을 테니. 늙어가는 딸과 엄마의 연결고리라면 연결고리라 할 수 있는 게 하나 더 드는 경험은 쉬이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이지 않은가.      




역서가 늘어난 지금은 더 이상 출간되는 역서 한 권 한 권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때의 감정이 조금씩 희석되고 있는 터라 이제는 출판사에서 집으로 보내주는 책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후기를 찾아볼 여유도 없거니와 해외에 살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서점에 진열이 되었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 되고 있다.       


물론 더 마음이 가는 책도 있다. 아동 도서를 두 권 번역한 적이 있는데 글자 수가 얼마 되지 않아 권 당 번역료가 1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수정 작업은 한도 끝도 없었기에 돈을 바라고 한 작업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완성된 책의 모습이 예뻤고 내 아이에게 읽어주니 좋았다. 증정본으로 받은 나머지 두 권을 주위 가족에게 나눠주는 호사도 누렸다.     


노지양 번역가는 번역을 하다 보며 증정본이 많아지기 때문에 주위에 나눠줄 책이 많아진다고 말한다. 그게 출판 번역가의 장점이라고.  


나의 경우 기껏 해 봤자 증정본을 1권이나 3권, 많아봤자 5권 정도밖에 못 받는지라 지인들에게 나눠줄 책이 많지는 않다. 허나 돌아보면 내가 번역한 아동서를 아이가 있는 주위 가족에게 나눠주고 기분이 좋아진 건 나였다. 필요한 이에게 공짜로, 그것도 내 이름이 찍힌 책을 선물로 줄 때 덤으로 얻는 짜릿한 기분은 또 다른 책을 번역할 힘을, 그리고 살아갈 힘을 준다. 책이 나올 때마다 기분이 롤러코스터급으로 급상승하지 않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이 같은 나눔의 기쁨이라는 것을 다른 번역가의 글에서 배운다.     




나에게는 내가 번역한 책의 오타를 손수 적어 건네주는 아빠도 있다. 낯간지러운 말을 건네지 못하는 아빠가 늙어가는 딸의 뒤늦은 자아실현을 묵묵히 응원하는 마음의 징표일 거다.



아빠의 메모


부모님의 이런 마음 덕분에 아무리 힘든 길일지라도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러면서 나는 한편 뒤돌아본다. 난 부모님의 힘겨운 길을 얼마나 응원해주었을까. 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걸 직접 키워보니 알겠지만 분명 그 이상의 몫을 해낼 수 있었을 텐데, 함께 있을 때 충분히 그럴 기회가 많았는데. 못난 딸은 머나먼 타국에 와서야 그걸 깨닫는다.


내가 삐뚤어지지 않고 남 탓하지 않고 꿋꿋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면 그건 모두 부모님 덕일 테다. 내 책이 출간되면 뉴욕에 있는 나보다 늘 먼저 받아보시는 부모님. 책장에 내 역서 코너를 별도로 마련했다며 사진을 보내온 엄마와 통화를 끊은 뒤 다시 힘을 내보자고, 저 책장을 꽉 채워보자고 다짐해본다. 


누군가의 응원을 업고 하는 일이 이리 힘이 되는 일임을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고 나서야, 내가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고 나서야 깨닫는 부족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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