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책이 읽고 싶어 진 건. 잃었던 입맛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과는 다르게 그것은 그토록 느닷없었다.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었으므로 언제 달아날지 모를 찰나의 순간을 놓칠세라 잠이 덜 깬 멍한 얼굴을 책장에 드밀었다. 지금을 놓치면 책을 읽고 싶은 마음도 놀라서 화드득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고른 건 아무래도 제목 때문이었지만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정말 이 책으로 고르길 잘했다고, 아이들이 지금 당장 깬다 해도 그 마음을 놓치지 않고 언제든 이어서 다시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세상 밖으로 밀려난 듯 보이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세상을, 가족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삶을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듯 이 책을 그렇게 요약해 버릴 수는 없겠지 싶으면서도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꺼내어 보이는 그 점이 좋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화자 중 한 명인 나나는 주문을 외듯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계속해서 말한다. 자신을 향한 주문인 듯 그 말에는 어떠한 힘이 있어서 그녀로 하여금 용감한 선택을 하게 하고 생각을 하게 하고 또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들의 생각이 선택이 행동이 사회가 정한 어떠한 선에서 본다면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는 분명 힘이 세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에 나온 지구 여인이 떠올랐다. 46억 년이나 된 이 지구 여인을 마흔여섯 살의 여인으로 본다면 "우리가 무엇이든 뭐가 되든 모든 것은 그저 그녀의 눈이 한순간 반짝인 것일 뿐"이라는 말.
지구 여인의 시간에서 본다면 나의 하루와 고민은 한순간의 반짝임조차 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나는 그 하찮음이 무안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간다.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간다.
생각해 보면 바로 그 지점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놓여있지 않을까 싶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든 기쁨의 눈물을 흘리든 계속해보겠다는 그 마음. 무언가를 기억하고 마음에 담고 소중히 여기고 때로는 그것이 상처가 되어 돌아오더라도 끝끝내 놓지 않으려는 마음.
우리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겪는 건, 일순간 지나가버리는 것일지언정 나를 이루는 많은 것들을 소중히 하려는 우리의 마음 때문일 거라 믿는다. 그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진짜 힘듦이 찾아오는 것인지도.
그러니 나는 그 마음만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 책이 나에게 계속해보라고 말해준 것은 바로 그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결국 이틀 만에 다 읽고 말았다. 종일 이삿짐을 싼다고 몸이 피곤했지만 낮잠을 자는 대신 책을 읽었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쉰 기분이었다.
그러고 나서 밤에 누웠는데 이 소설이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매의 서사라는 점에서 그렇고 기억의 공유라는 공통분모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랬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와의 조금은 기이한 관계 또한.
깜빡 졸음이 올 정도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서사에 몇 번을 봐도 역시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인데 《계속해보겠습니다》는 그 영화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분명 잔잔한 영화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겠지만 제발 누군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만약 정말 그 날이 온다면 조금은 느슨한 마음을 장착한 채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소설을 읽었을 때의 나를 떠올리며 가벼이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