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에 다양한 지인이 등장했다. 지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를 테면 몇 번 말을 나눠본 적 없는 아이와 같은 반 학부모라든지. 꿈속에서 그들과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도 기억에 없다. 그렇게 단편을 몇 편을 쓰고 그때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나니 어느새 동이 터 있었다.
자기 전에 읽은 책 때문이었을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듯한 거리를 유지하는 카운터 이편과 저편의 이야기가 나의 무의식에 남아 밤새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나 보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에 들어와 차차 낡아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도 이 거리에서 매일 조금씩 낡아가는 중이다."
-카운터 일기 중-
브루클린, 지금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커피숍에서 4년 동안 바리스타로 일한 그녀의 내밀한 일기를 보다가 '낡아가는'이라는 단어에 우뚝 멈춰 섰다.
평소 낡아가는 모든 것들을 애정한다 생각했는데 내가 그 낡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늙는 것이 아니라 낡는 것. 마음에 들었다.
잘 낡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간이 잘 낡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저자를 보며 뉴욕에 와서 나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이 떠올랐다. 몸으로 하는 봉사 활동. 이사를 통해 잊고 있던 육체노동의 다양한 얼굴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 나는 내가 지금 살기 위해 하는 일 이외에 나의 지층을 단단히 쌓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잘 낡아가는 모든 사물이 사람의 손길을 거치는 시간과 더불어 공기나 먼지, 혹은 바람의 내려앉음으로만 이루어진 가만히 지나가는 시간을 공평하게 인내하듯, 잘 낡아가는 인간이 되려면 열심히 살아가는 시간만이 아니라 쉬어가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휴식은 단지 노동의 부재가 아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쉰다는 사전적 의미에서부터 돌연한 깨달음을 얻는 경험, 마음에 품위를 부여하는 시간, 억압에 대항하는 태도, 삶에 관한 집요한 질문, 자기 성찰로의 회귀, 희망을 발현시키는 과정, 새로운 영감의 탄생, 일상을 간직하려는 시도 등 수많은 유형이 존재한다.
-혼자 있기 좋은 방 중에서-
계속 쉬지 않는 사람의 최후는 딱 두 가지, 죽거나 미치거나, 라는 저자의 단언적인 발언이 아니더라도 휴식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태평한 외톨이'가 되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맨들맨들하면서도 나름의 색깔이 입혀져 고혹적인 멋이 내려앉은, 그렇게 낡아가는 나를 완성하는 건 그런 시간일 테다.
나에게 쉰다는 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요 몇 주 내가 쉬지 못했다면 그건 이사한다고 일치감치 상자에 가둬버린 책들 탓일 거다. 꺼내 달라고 아우성치는 듯한 책을 외면하며 효율성, 합리성 위주로만 흘려보냈던 하루들은 나에게 쉼의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사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서서히 일상의 리듬을 되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 건 며칠 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알 수 없는 꿈들에서 깨어난 오늘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새로운 집주소로 네 권의 책을 주문했다. 코로나 때문에 배송비가 훌쩍 올라버렸지만 더는 어쩔 수 없었다. 더 잘 쉬기 위해, 더 잘 나아가기 위해, 더 잘 낡기 위해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 자명한, 어쩜 나 자신도 알고 있었을 처방전을 이렇게 글을 쓰고 나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내가 한심하지만 그 핑계로 이런 어수선한 마음을 글로 풀어냈으니 다행이지 싶다. 아무래도 내일도 글을 써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