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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Oct 09. 2020

계절의 마디를 좋아하세요?

서점에 갔더니 2021 다이어리가 평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2020년은 어서 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 괜히 입을 삐죽이 내밀고 그 다이어리들을 바라보았다.


여기에서는 ember로 끝나는 계절, 그러니까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가 찾아오면 한 해가 저무는 쪽으로 시간이 기울었음을 의미한다던데 September가 지나 이제 October도 중순에 접어드는 지금은 한 해의 끝자락으로 봐야 할까. 여느 해와는 분명 달랐던 이 해의 끝자락을 조금 더 붙들고 싶은 마음은 왜일까.


10월은 내가 첫째 아이를 낳은 계절이기도 하다.

계획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10월을 노린 나의 의도에 맞춰 아이는 예정일 나흘 전에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아이가 빠져나간 내 몸을 그다지 차지 않았던 바람이 맞아준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는 질문은 나를 늘 설레게 하는데 우울함을 가장하던 20대에는 가을이었고 30대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지금은 쨍한 여름도 매서운 겨울도 다 좋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계절이 있기는 했나 돌아보니 내가 좋아한 시기는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넘어가는 지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끝나나, 끝나기는 하려나 하며 무더위에 지쳐갈 무렵 몸뚱이에 와 닿는 서늘한 바람, 반팔이 아닌 긴팔로 옷장을 채울 때의 기분, 갑자기 목도리와 장갑이 필요해질 만큼 쌀쌀해지는 공기, 그러다가 무거운 코트를 벗어버려도 될 만큼 따뜻해지는 날씨.


내가 좋아한 것들은 다 그 경계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계절의 마디마다 꺾이는 내 마음을 좋아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은  잠시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 곁을 떠나고 만다. 우리는 이제 봄과 가을이 없고 긴 여름과 겨울만 남았다고 말하지만 봄과 가을은 아무리 짧을지언정 우리 곁에 있다. 지금이 바로 그 가을 아닌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순간도 잊지 말자고. 처음으로 코트를 꺼내 입게 되는 날을 잊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말해본다.


코로나가 우리를 잠식한 2020년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여름이 있었다고, 그건 가을도 겨울도 마찬가지였다고, 내년이 되면 봄이 또다시 찾아올 거라고.  


사는 건 결국 그런 순간들의 집합이라고.


올해 아이의 생일에는 네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냐고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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