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자리 Apr 07. 2020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해외살이 이야기

머리카락마저 지친 기분이었다. 


첫째 아이의 신경질적인 울음과 둘째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에. 하필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원래 가던 한인 미용실은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동안 눈길 한 번 안 준 동네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뉴욕에 온 이후 처음이었다.  

    

미용실 안은 깨끗했다. 나 말고 손님이 딱 한 명 더 있었고 두 명의 직원이 그 손님에게 매달려 염색 시술을 하고 있었다. 5분 정도 기다린 뒤 머리를 감으러 갔는데, 직원이 자꾸 편한지 묻는 걸 봐서 내가 불편해 보였나 보다. 누군가가 내 머리를 감겨주는 경험이 너무 오래간만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미용실에는 세 가지 언어가 둥둥 떠다녔다. 우크라이나어, 다른 손님의 입에서 쉴 새 없이 나오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언어, 그리고 우리가 공통으로 사용하지만 완벽의 형태에서 멀어진 영어라는 언어. 우리의 공용어인 영어는 필요할 때만 잠시 등장했고 우크라이나어가 줄곧 미용실을 점령하고 있었다. 언어로 밥 벌어먹고 사는 직업병 때문이었는지 그들의 말에, 목소리 톤에, 귀 기울여 보았으나 단어들은 보란 듯이 내 귀에 꽂히기를 거부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을 때 우리는 내 나라 언어의 상실에서 기인한 소외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 경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실감. 그래서 그랬나, 그 날 미용실에서 나를 감싸고 있는 언어가 공용어인 이 나라 언어가 아닌 제3의 언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푸근하게 다가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단어들은 내가 이곳에 살면서 늘 느끼고 있었을지 모르는 긴장을 풀어주었다.


미용실이라는 공간은 본래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한국에서도 서비스를 받는 동안 어색하게 미용사와 친분을 나누고 그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스타일을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 조용히 책을 보고 싶어도 말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괜히 서로의 신상을 캐고 때로는 어울리지도 않게 지나치게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대화를 나눈 뒤에는 결코 저렴하지 않은 돈을 지불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기분으로 미용실을 나서는 순간이 잦았다.      


그건 너무 비싸 자주 가지 못했던 뉴욕의 한인타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단발머리 사진을 들고 가서 보여주자 미용사 아주머니가


"이건 뒤통수 동그랗고 얼굴 조막만 한 서양애들한테나 어울리지 동양인은 하면 안 돼요."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사실을 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문장에 조금은 마음을 다쳤던가.


같은 사진을 우크라이나 미용사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보란 듯이 납작한 내 뒤통수를 커버하는 멋진 단발머리를 연출해주었다.


허나 그보다 고마웠던 건 다른 불편한 감정이 겹겹이 쌓이는 경험을 제공하지 않은 거였다. 어설픈 신상 캐기나 신세 한탄 등으로 나의 짧은 힐링 시간을 눅눅하게 만드는 행위를 하지 않은 거였다. 이 모든 것이 어찌 보면 언어의 상실에 기인한 거라는 아이러니가 우스워, 언어의 상실이 우울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되어 그렇게 또다시 머나먼 땅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어느덧 뉴욕에 온 지 7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이방인이라는 신분은 나를 늘 주춤하게 만든다. 내가 나고 자란 문화와 이 나라의 문화가 충돌할 때, 내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포기할 수 없지만 거주하고 있는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무시할 수도 없을 때, 취향의 상실이 강요될 때 난 주춤하고 만다. 


내 몸은 국경을 넘었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국경 어딘가를 헤매고 있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픈 몸을 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