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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an 29. 2022

내 안의 타자

누구에게나 몸속의 타자가 있다. 환자는 그 타자가 먼저 눈을 뜨고 깨어난 사람이다. 먼저 깨어난 그 눈으로 생 속의 더 많고 깊은 것을 보고 읽고 기록하는 것-그것이 환자의 주체성이다(<아침의 수학자>).   



엄마는 내가 갖게 된 지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무 자만하지 않도록 (저 높은 분이) 하나의 약점을 준 거라고.


정말로 그런 걸까? 엄마는 그 얘기를 딱 한 번만 했지만 나는 그 후로도 그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자만한 인생을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주위에 이런저런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병에 비하면 내 병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한창 예민할 10대 후반과 20대를 통과할 때 나에게 지병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우울의 나락으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병은 그렇게 민감한 시절 내 자아의 일부를 형성했다.


병을 통해 나는 나를 객관화하는 법을 배웠다. 살다 보면 나를 수치로 표현해야 하는 순간에 마주한다. 내가 수치화되는 순간. 그런 순간에 담대해지는 것. 내가 병을 얻으며 덤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내 몸에서 깨어난 타자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었다. 남들이 보지 못했을 누군가의 이면을 보고 공감해 주었고 남들과 다른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 그런 순간에 노출되었을 때 나는 분명 엄마가 옆에 있는데도 적절하지 않은 순간 엄마 손을 놓쳐버린 아이처럼 허둥댔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 보니 그건 아무 일도 아니란 걸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5년도 더 전에 끊었던 약을 작년 10월부터 다시 먹게 되었다. 의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코로나 백신이 원인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면 그렇게 갑자기 수치가 급증 할리가 없다고. 슬픔이 내 위에 올라타 나를 휘두르는 싸움에서 여러 번 져봤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순간이 닥쳤을 때 더 이상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어제 찾은 병원에서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냐는 나의 물음에


"lifetime"


이라고 대답한 여의사의 당돌함에 마주하는 순간 울컥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자기 몸이 아니라 이거지. 괜히 의사를 미워도 해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병원 문을 나섰지만 간밤에 많이도 설쳤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나친 자기 연민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딱 적당한 만큼의 슬픔을 허락해야만 하는 순간.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슬픔에 함몰되고 만다. 그게 나를 지키는 법이라는 걸 병과 함께 한 시간이 가르쳐주었다.


어떤 병은 사람을 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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