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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Nov 29. 2021

거리의 음악가

목요일마다 지하철을 타고 물리치료를 가는데, 그 시간마다 지하철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같은 사람을 만난다. 벌써 몇 주나 되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노숙자와 일반인(?) 사이 어디쯤의 모습을 하고 바이올린을 든 채 다급히 지하철에 오른 그.


그렇게 급하게 연주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게다가 연주라 할 수 없을 만큼 자주 삑사리가 났고 늘 같은 곡이었다. 돈이 있어도 난 줄 생각이 없었지만 지하철에 있던 한 두 명은 꼭 그에게 돈을 주었으니 그는 그렇게 한 정거장 만에 연주를 마치고 돈까지 수거한 뒤 재빨리 지하철에서 내리곤 했다.


바람을 일으키며 다급히 내리는 그의 뒷모습까지만 봐서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그는 아마 다음 칸으로 가려고 그렇게 서둘렀을지도 몰랐다. 매주 그를 보니 어느덧 뒷 음이 앞 음에 업혀서 가는 듯한 그 다급한 연주가 친근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네 번째 그를 본 날, 나는 그의 엉망진창인 연주에도 불구하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내고 있었다. 그가 서둘러 내리기 전에 건네주려고.


그때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이 그에게 돈을 주려고 서두르다가 들고 있던 음료를 지하철 바닥에 엎었고 나는 내 가방에 있던 휴지를 얼른 꺼내 건넸으며 그 사람과 나는 거의 동시에 거리의 음악가에게 돈을 건넸다. 거리의 음악가는 돈을 챙겨 다급히 내렸고 음료를 엎지른 그 사람도 내렸다.


몇 초만에 지하철에는 우리 셋 중 나만 남았지만,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둘이 내리고 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하철 내의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우리 셋만 공유한 무언가가 존재했던 그 순간. 그건 아무 순간도 아니었지만 또 많은 것이 담겨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잠시 멍한 채로 그 공기를 간직하기로 했다.



오늘, 다른 시간대에 지하철에서 그를 다시 봤다. 못 본 사이에 더 상해 있었고 연주는 살짝 느려져 있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여전히 다급히 내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올해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많은 것이 지나갔고 그만큼 많은 것이 생겨나기도 한 올해. 서둘러 보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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