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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Nov 19. 2021

잃어버린 속옷이 가르쳐준 것

얼마 전 가장 자주 입는 속옷을 잃어버렸다. 짙은 보라색의 그 물건. 신랑이 건물 지하에 위치한 런드리 룸에서 빨래 돌린다고 가져간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신랑을 의심했다. 칠칠치 못하게 어딘가 흘리고 왔구나. 그런데 그러기에는 제법 큰 물건이었기에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이 건물에 음탕한 사람이 살고 있나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혼자 온갖 망상을 거듭한 어느 , 고장  서랍장을 떼어내다가 뭔가 바닥에  하고 떨어졌으니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바로  속옷이었다. , 이렇게 허무할 수가. 옷이 너무  차서 밀리고 밀려 서랍장 끝에 구겨져 있었던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괜히 신랑을 의심하고 건물 전체를, 동네 사람들 전체를 범인으로 몰다니. 아무도 몰랐을 테지만 겸연쩍어졌다. 무수한 양말이, 장갑이,  때는 짝이 있었으나 없어진 것들이 그런 식의 오해를 사고 있겠지. 세상 억울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요즘 들어 남 탓, 남 의심을 하는 일이 잦다. 나이를 먹을수록 속만 좁아지는 것인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심해야 할 일 투성이다. 꼰대 되지 않기, 명령하지 않기, 내 생각만 옳다고 여기지 않기.


엄마가 나한테 했던 말들을  아이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는 나를 본다. 아니야,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도 들은 대로  대로 하고 있다. 아이가 그 말을 나에게 다시 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차 한다.


나 하나 키우기도 버거운 내가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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