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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n 21. 2021

아마존의 노예

나는 아마존이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그건 아마존에서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으며 어디에서 사지 고민할 것 없이 아마존! 하고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존 밖에 떠올릴 곳이 없는 건 좀 착잡하다. 거대한 공룡 기업의 권력에 놀아나는 힘없는 소비자가 된 것 같아 분통이 터질 때도 있다.


결정적으로 그 거대한 힘에 진절머리가 난 계기가 있었다. 평소에 난 아마존이 환불을 잘해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건이 분실될 경우 서슴지 않고 환불을 해주었고 마음에 들지 않아 반품을 원한다고 하면 배송비 문제 때문인지 반품된 물건을 받지 않고도 환불을 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트북을 아마존에서 사는 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사 온 노트북이 수명이 다해갈 무렵 그냥 맥북을 사야겠다 싶었다. 한국에서 사 온 LG 노트북은 몇 년 전 첫째가 키보드 부위에 접시를 내려치는 바람에 가장 자주 쓰는 자판이 날아가 버렸고 그 부분을 낑낑대며 누를 때마다 팔이 저리고 승모근이 찌릿했다. AS를 받으려면 노트북을 통째로 가져와야 한다는 얘기에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몇 년째 일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배터리가 문제였다. 배터리 수명이 다 했는지 노트북은 충전기를 계속해서 꼽은 상태여야만 잠에서 깨어났다.


결국 새로운 노트북을 사기로 구입했지만 비용이 부담이 되었던 신랑과 나는 아마존에서 무이자 할부로 판매하는 맥북을 덜컥 사버렸다. 며칠 후 집에 도착한 노트북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상자를 열어본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안에는 시리얼이 수줍은 자태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시리얼의 멱살을 쥐고 노트북의 행방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다양한 사람을 거쳐 이동하는 동안 누군가의 탐욕이 저지른 사고일 게 뻔했다. 포장 상자의 사이즈나 겉에 표시된 문구 등이 누가 봐도 노트북임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아마존에 연락했더니 일단 시리얼을 그대로 포장해 보내주면 도착하는 대로 환불을 해줄 테니 새로 주문하라고 했다. 순진하게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아마존이니까. 그동안의 CS는 정말 흡족했으니까. 새로 주문한 맥북은 무사히 집으로 배달되었고 나는 환불되지 않는 계좌를 며칠 째 바라보다가 아마존에 다시 연락을 했다. 담당자는 고가의 제품이기 때문에 조사가 필요하다며 며칠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하며 며칠을 흘려보내고 나자 이러다가 환불을 안 해주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건 사실이었다.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서 말도 바뀌었고 나중에는 경찰서에 가서 서류를 떼어 와야 인정해주겠다는 말에 신랑이 경찰서까지 갔으나 경찰은 당연히 자기들은 확실한 증거 없이 그런 걸 써줄 수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몇 번의 통화가 더 있었지만 상황은 지지부진했다. 구글에 들어가 찾아보니 영국에서 똑같은 사례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그가 받았다던 시리얼조차 똑같았다. 그걸 보니 이건 아마존의 음모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중간 담당자의 탐욕이 아니라 아마존 자체의 거대한 음모가 배후에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잠 못 드는 날들을 보냈다.


스몰 클레임을 걸어서 돈을 받자는 생각으로 의견이 굳혀갈 무렵, SNS에서 만난 뉴욕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쉽지는 않을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마존은 거대 기업이므로. 순간 쿠팡을 변호한다는 형부가 떠올랐다. 아마존 역시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로펌에 전담 변호사만 수두룩하겠지. 그들을 상대로 싸운다는 게 쉽지는 않을 터였다. 딱 봐도 견적이 나왔다. 결국 신랑과 나는 싸움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싸움을 거는 데 돈이 드는 데다 별다른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이길 확률은 누가 봐도 희박했다. 화가 났지만 별 수 없었다.


현재 나는 그 노트북으로 번역도 하고 지금 이 글도 쓰고 있다. 노트북을 볼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노트북은 아무런 죄가 없다. 정작 화가 나는 일은 따로 있다. 그 사건 이후로도 우리는 아마존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주문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미국 내 온라인 상거래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아마존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게 편리하고 저렴하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할 때면 특히 찝찝한 기분이 든다. 아마존이 책 판매로 사업을 시작하기는 했고 또 덕분에 책을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는 하나 아마존에서 책을 구매할 때마다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 동네 서점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중고서적은 전국의 헌책방과 독자를 연결해주기 때문에 합리적이기는 하다. 그래서 중고서적을 구입할 때에는 조금 어깨를 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성급히 결제 버튼을 누르고 창을 닫는다. 며칠 전에도 궁금했던 책을 검색하려고 아마존에 들어갔다가 한 권 사면 다른 책 50퍼센트 할인이라는 마케팅 전략에 넘어가 결국 두 권의 책을 아마존에서 사고 말았다.   


아마존 때문에 동네 책방이 굶을까 걱정하면서도 내 손은 결제 버튼을 향해 마구 달려간다. 그건 미국의 책값이 비싼 것도 한몫한다. 물론 미국의 GDP가 한국의 두 배가 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책값과 미국의 책값을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가난한 번역가인 나에게는 한 권에 25달러 하는 책은 아무래도 선뜻 사 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동네 책방에서 책을 읽고 구입은 대형서점에서 10퍼센트 할인해 구매하는 얌체족들이 많은 것을 알기에 되도록 그런 독자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까지 썼는데 아마존에서 주문한 두 권의 책이 배송되었다. 숨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상자를 열었다. 책은 아무런 죄가 없다. 냅다 아마존 상자를 던져버리고 책을 펼쳐본다. 책 냄새가 좋다. 하지만 아마존은 아무래도 좋아지지 않는다.


https://taling.me/Talent/Detail/3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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