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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Oct 23. 2020

모든 기회를 잡을 필요는 없다

넷플릭스에서 <청춘 기록>이라는 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는데 박보검 때문이 아니라 20대의 패기와 열정을 간접 체험하는 게 좋아서다.


특히 박소담이 연기하는 안정하 캐릭터가 인상적인데 20대에 자신의 브랜드숍을 차리는 등 꽤나 패기가 있다. 자신의 브랜드를 내겠다는 욕심은 있지만 자기 답지 않은 방식이나 결은 과감히 거부하는 고집도 칭찬해주고 싶고.


소소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지만 스튜디오를 방문한 뒤 자신과 정말 안 맞을 거라는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되며 제안을 거절하는 모습에는 절로 박수가 나온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어린 나이에 이만큼 확신을 갖고 행동하기가 드라마에서만큼 쉬울까.


적어도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20대는 치열한 싸움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졸업해서 대기업에 취업한 게 다였으니(이 과정도 만만치는 않았다). 물론 그래서 그 후로 엄청 방황하게 되었지만.


최근에 읽은 <나의 10년 후 밥벌이>를 보면 요즘 젊은것들은 똑똑하다는 얘기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글쓴이조차 진짜 지겹다며 계속 반복하는 그 말이 드라마를 보면 정말 사실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저들과 경쟁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지 싶다. 하지만 내가 언젠가 만족시켜야 하는 고객이 그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정신이 퍼뜩 들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든 건 오늘 에이전시에서 샘플 번역 참여 여부를 물으며 보내준 로맨스 소설을 읽어보고 나서였다. 처음에는 오, 소설 좋지 하면서 곧바로 할 생각에 재빨리 오늘 분량을 마친 뒤 호기롭게 번역을 시작해 보았으나 절반쯤 진행하다가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는 재미가 없었다. 내가 늙어서 그런지 소설가의 재량 문제인지 뻔한 설정과 내용 등이 나부터가 재미없었다. 소설은 자고로 재미가 우선인데. 그래서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번역하게 된 <마이 시스터즈 키퍼>가 생각났다. SISO 출판사 사장님이 직접 올린 글을 뒤늦게 보고 지원했는데 알고 보니 그전에 진행하던 번역가가 중도에 번역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번역가를 찾게 된 거였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번역 기간이 몇 달 되지 않았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은 꽤 두꺼운 편에 속한다.


원래 번역이 되었던 책인데(그 책은 절판되었다) 오역이 많아서 다시 번역하는 거라고. 괜히 부담도 되고 그렇게 두꺼운 소설은커녕 소설을 번역해본 적이 없어서 긴장도 되었지만 게다가 그 가운데 한국에 3주나 휴가를 가는 바람에 번역 기간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정말 잘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잡고 싶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그런 기회를 준 출판사에 지금도 정말 감사하다. 덕분에 나도 누군가에게 저 그거 번역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 한 권은 생겼으니.


다만 지금 다시 그 책을 번역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3년 사이에 나는 많이 성장했으므로.



그 3년 사이에 책을 보는 안목도 는 것 같다. 그와 더불어 무조건 달려드려는 마음도 좀 진정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번역하게 될 책을 보면 일단 흥분부터 하는 증세는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기회를 찾아 나서기도 해야 하지만 들어오는 기회를 전부 잡을 필요는 없다.


나에게도 안정하처럼 나와는 결이 맞지 않아 할 수 없다 말하는 강단이 필요할 듯하다. 비록 드라마 속 인물이지만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모처럼 배워갈 게 있는 인물을 만났다.


나의 구멍을 찾아준 그녀에게 비록 허구의 인물이지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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