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살랑이던 2015년 10월,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토록 바라던 딸이었다. 안기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었다.
산후조리를 해주러 일주일 전 한국에서 날아온 엄마와 함께 병원에 다녀온 날 미미한 진통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리나케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고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몇 주 전에 싸 둔 출산 가방을 괜히 또 한 번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예정일 나흘 전이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는 산후조리원이라는 게 없다. 산모는 보통 출산 후 이틀 째 날이 되면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가며 병원에서는 출산 직후 산모에게 진짜로 아이스크림과 얼음물을 준다. 나는 얼음물과 그 옆에 덩그러니 놓인 돌 같은 빵을 바라만 볼뿐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했다. 미국 땅에 살고 있어도 나는 한국인이었고 한국인의 몸이었다.
집에서 엄마의 도움으로 산후조리를 하는 가운데 육아를 시작했다. 육아는 일상의 재조정이 필요한 일이었다. 출산 직전까지 내내 입덧을 달고 살고 매일 토를 했지만 그래도 그건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일상이었다. 육아는 달랐다. 나의 욕망과 아이의 욕망을 저울질하며 사실은 아이의 욕망에 질질 끌려다니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생각보다 일을 금방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아이를 돌보는 생활이 지루해서였다기보다는 프리랜서의 관성 때문이었다. 나의 출산을 회사에서 알고 있고 정해진 출산휴가를 쓰는 상황이었다면 달랐겠지만 나에게는 애초에 그러한 경계가 없었다. 각기 다른 클라이언트에게 나의 임신 소식을 알리는 일은 불필요한 일처럼 여겨졌고 아이를 낳은 후 일이 끊기지 않고 들어오면 그건 그저 감사한 일이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하며 그 과정을 또 한 번 반복한 후 나는 엄마라는 말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엄마가 된 나에게는 쉬이 익숙해지지 못했다. 나 자신을 엄마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모성은 장착되어 있었던지 잠 많은 내가 잠을 희생했고 그 밖의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엄마로 보는 것과 남들에게 엄마로 보이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3년 전인가, 뉴욕 내 대학 동문회에 갔다가 한참 어린 후배들을 만났었다. 학번이 11이나 13으로 시작되는 친구들이었다. 그 아이들 앞에서 나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그 아이들이 나에게도 저희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면 그건 내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두 아이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기이한 박탈감을 경험했다. 두 아이를 얻고 또 다른 나를 잃었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상실감이었다.
싫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받아들이는 데 조금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엄마들만 득실대는 상황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상황에 마주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늘 따라붙었다.
엄마가 되기는 했지만 새로 걸친 옷이 어색하기만 했던 내가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위치를 받아들이기 위해 한 일은 결국 다른 엄마들의 글을 찾아 읽는 거였다. 책 속에서 나는 모든 걸 품어줄 것만 같은 마음 넓은 엄마를 만나기도 했고 엄마가 우선이라는 이기적인 엄마를 만나기도 했다. 분노와 애정 사이에서, 내 걸 지키고 싶은 마음과 내어주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엄마들.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안기고 싶은 마음에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건너온 줄 알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안기고 싶은 마음이 크단 걸 그들의 글 속에서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밟은 뒤에 엄마가 된 사람은 없을 거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엄마가 이토록 방황하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거다. 하지만 세상에 엄마 되기 매뉴얼 같은 건 없다. 각기 다른 엄마의 상황과 기질을 고려한 양육서를 집대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일 거다. 결국 엄마들은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알아서 찾아간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후회도 해가며. 왜 이런 건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가르쳐주지 않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려가며.
엄마인 지금의 내 위치가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엄마가 되기 전의 나를 떠올린다. 딱히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기에 사실과 거짓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한 마음으로 그 때를 돌아본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립기는 하다. 누구누구의 엄마로서의 나를 그려보지조차 못했던 때만 느낄 수 있는 홀가분함은 조금은 그리운 감정이므로. 한 동안은 이런 마음과 함께 살지 않을까.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립다, 그립지 않다를 조금씩 오가는 마음과. 다음에 엄마를 보거든 물어봐야겠다. 엄마는 언제 진짜 엄마가 되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