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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n 08. 2021

조금만 검색되는 사람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이 세상은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전자에서 후자로 갈 수는 있으나 후자에서 전자로 갈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이름을 한 번도 검색하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한 번만 검색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이름으로 전자책을 처음 냈을 무렵부터 후자의 세계로 넘어갔다. 그 이후 내 이름을 얼마나 검색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이름을 찾아보는 건 아니다. 그저 몇 달에 한 번 생각날 때 처 볼뿐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165센티미터에 42킬로그램이라는 배우의 프로필이 사진과 함께 뜬다. 위키백과를 클릭하면


000은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이다.

000은 대한민국의 드라마 작가이자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다

000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000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라고 나온다. 번역가 000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전교생 통틀어 나와 꽃미남 선배, 그리고 우리 반 반장 이렇게 셋 밖에 없던 내 이름은 이제 BTS 덕분에 미국인들도 아는 흔하디 흔한 이름이 되었다. 배우도 레이싱 배우도, 축구선수도 작가도 있다. 하는 수 없이 000 번역가라고 검색 범위를 좁혀서 쳐본다. 다행히 번역가 중에는 나밖에 없는가 보다(얼마 전 이 역시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로 검색되는 글은 내가 쓰거나 나를 언급한 블로그나 브런치 글, 내 책이나 번역서가 언급된 글들이다.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한 분량의 검색 문서 속에서 긍정적인 말들을 조개 줍듯 주워 담아 절망이 찾아오는 날 희망의 약처럼 꿀꺼덕 삼킨다.


아무도  알아주는 무명 번역가에 가깝지만  번은 인터넷 서점에 내가 번역한 책에 대한 번역 지적이 실린 적이 있다. “꽃은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된다면 오역은 누군가 까발려주어야 오역이 된다 권남희 번역가의 말을 떠올리며 가볍게 넘겨보려 했지만 낯이 뜨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근처를 클릭하지도 못했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사람처럼 자꾸 들여다보니까 무뎌지는 것도 같다. 이게  관심 아니겠는가. 무플보다는 악플이 낳지 않나 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인다. 검색된다는  조금은 설레지만 많은 부담과 불편을 수반하는 일이다.


살다 보면 알게 되지만 어떤 대단한 일이 한 번 일어난다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거나 또 한 번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를 번역한 뒤 연이어 소설 번역을 하게 될 거라는 나의 천진난만한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으로 끝나고 말았다. 출판사들이 나란 번역가를 알아보고 먼저 손을 뻗어올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으나 그렇게 안 풀릴 줄은 몰랐다. <아무튼 뜨개>를 쓴 서라미 번역가가 그 시간에 뜨개를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한 땀 한 땀 풀어냈다면 나는 조용히 책을 썼다. 그조차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책을.


2017년 11월 <그래도 번역가로 살겠다면>을 썼고 2018년 첫째 아이 출산 3일 전에 <어른이 되어 다시 시작하는 나의 사적인 영어공부>를 출간했다. 두 권의 판매량은 지금까지 합쳐서 500권이 조금 넘는데 정말 신기한 건 한 권도 안 팔리는 달은 없다는 거다. 처음에는 4만 원 정도였던 매 달 수입은 이제 만 원 정도에 머문다(참고로 책의 정가는 5,000원이다). 매 달 세금을 제하고 만원이 안 되는 금액을 정산해 받으며 생각한다. 그래도 1년이면 12만 원, 10년이면 120만 원을 버는 거구나. 20년이면 240만 원 30년이면 360만 원..... 물론 그때까지 팔리고 있다면 말이다. 올해는 밀리의 서재에 입고되어 판매량이 좀 올라가나 싶었는데(밀리의 서재에서는 10권을 대여하면 1권 판매로 쳐준다) 읽는 사람은 꽤 되는데 신기하게 판매량은 한 권도 없다.


가끔 리디북스나 밀리의 서재에 들어가 리뷰를 살핀다. 새로운 리뷰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아마 영원히 리디북스 리뷰의 맨 위 칸을 차지할 그 리뷰는 다시 봐도 정말 신묘하다. <어른의 영어>를 읽은 한 독자는 “나만큼이나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했는 데 있었습니다.... 잠깐 읽어도 그 과정이 느껴집니다.”라며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감상평을 남기셨는데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그걸 느끼셨는지 그리고 그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 정말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왕이면 조금 더 길게 써 주시지 담백하고 감칠맛나게 딱 세 줄로 요약한 그 리뷰의 뒷이야기가 나는 지금도 무지 궁금하다.


이 글을 쓰다가 정말 오랜만에 ‘다음’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오호라 새로운 후기가 있었다. 아래로 쭉쭉 스크롤을 하다가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글 앞에 내 책이 맞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읽어보았으나 맞았다! 물론 인생에 조금의 변화라고 생겼다면 인생 책 아니겠느냐라며 다소 거친 정의를 내리긴 하셨지만 그래도 그런 얘기는 아무한테나 하는 건 아닐 거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주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조금만 검색되는 사람이어도 괜찮다. 아니 조금만 검색되는 사람이어서 좋다. 일일이 찾아서 댓글을 달고 감사를 표하려면 검색창 하단의 숫자가 10개 이상으로 넘어가면 곤란할 테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검색되는 사람으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사람으로 살아보려면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많은 책을 번역하는 수밖에 없다. 뭐라도 해야지 무슨 일이든 벌어지는 법이다. 욕먹기를 두려워하며 아무것도 안 하면 노상 제자리일 뿐이다. 한 달에 만원이라도 벌면 1년이면 12만 원을 벌 수 있다. 한 달에 0원을 벌면 1년이 지나도 통장 잔고는 0원일 뿐이다.


울면서 달린다는 도대체 작가의 말처럼 모두가 겁이 나지만 울면서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일단 울면서라도 가다 보면 가끔은 이렇게 뜻밖의 후기도 만나기도 하고 팬이라는 분의 수줍은 고백도 받게 된다. 나도 팬은 처음이라 서로 수줍어하며 대댓글을 달다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때마다 더 달릴 힘을 얻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오늘도 부지런히 준비운동을 하는 수밖에. 거북이처럼 더디지만 꾸준히 올라가는 내 책의 판매량이 1000권이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도 검색되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 어딘가를 서성이는 나다.


https://taling.me/Talent/Detail/3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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