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 정도 뜸을 들인 뒤 결제 버튼을 눌렀다. 아이의 여름 캠프 이야기다. 너무 비싸 매 년 미루고만 있던 걸 이번에는 해보기로 했다. 나의 한 달 벌이를 전부 쏟아부어야 했지만 결국 일 안 하고 애랑 놀아주는 게 나은 선택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분석도 해봤지만 돈은 증발하더라도 5주라는 시간 동안 나의 제정신과 또 한 권의 역서는 남겠지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애랑 놀아주는 것보다 번역하는 게 더 좋아서였다. 그게 더 편해서였다.
번역은 예술의 영역인가, 기술의 영역인가. 대중에게 어떠한 반응을 끌어낼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예술가의 영역에 속하나 대략 얼마의 수입이 수중에 들어올지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번역할 책의 분량과 자간, 여백 따위를 보면 한글로 옮겼을 때 대충 원고지 몇 매가 나올지 가늠이 된다. 인세가 아닌 매절로 받는다고 쳤을 때 한 달에 벌 수 있는 금액이 곧바로 나오는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루에 번역하는 시간을 늘리면 전체 번역일 수가 줄고 게으름을 피워 조금만 번역할 경우 몇 달이 넘도록 같은 책을 번역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하루에 번역하는 분량을 두세 페이지만 늘려도 한 달이면 꽤나 극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차곡차곡 추가한 두세 페이지는 이자는 가져다주지 않지만 번역일 수 감량이라는 만기 적금보다도 뿌듯한 결과를 물어다 준다.
번역은 특정한 양의 시간을 투입해야만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일이다. 호박을 넣고 반죽을 만들면 호박색 파스타 면이 나오는 정직함과도 같다. 내가 번역을 좋아하는 이유다. 가끔 이 적나라한 정직함에 여지없이 눌려버릴 때도 있지만(놀 때는 전혀 돈이 들어오지 않으며 보너스 따위는 없다) 다른 곳으로 새는 에너지 걱정 없이 나 하나만 잘 끌고 가면 기필코 완성되는 일이다.
한 책을 중반쯤 번역할 때가 되면 샘플 번역을 했을 때의 마음이 시들해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 출판사나 에이전시에서는 당연히 샘플 번역의 퀄리티를 기대한다. 그리고 번역가는 번역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퀄리티를 한결같이 유지하지는 못한다. 똥 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거다. 그러니 억지로 느슨해진 세포를 바짝 조여야 한다.
무릇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세계에도 명암이 존재한다. 우선 암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일이 없을 때면 불안해진다. 프리랜서에게 한가함은 자유가 아니다. 공백은 휴식이 아니다. 불안을 물리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로 감히 육아를 권한다. 체력이 달리는 하루에는 불안할 마음이 뿌리내릴 틈이 없다. 아이를 데리고 일을 하는 엄마가 되면 ‘과일을 썰어줄 때에는 최대한 잘게 썰어서 나의 시간을 번다(최근에는 잘 찍히지 않는 포크를 주면 뭐든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그걸 찍는 동안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새로운 팁도 얻게 되었다)’ 같은 생활 팁도 무한 장착하게 된다. 조각 시간도 이어 붙여 쓸 줄 알게 되며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책이나 번역문을 읽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게 된다.
참고로 나는 엄마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두 번이나 했는데,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아이는 엄마의 몸 안에 들어와 뿌리내리는 순간 존재감을 뿜어내며 토를 유발하는데 엄마의 몸 밖으로 나간 뒤에도 회귀본능을 장착한 채 엄마 주위를 맴돈다. 다음 생애는 꼭 아빠로 태어나겠다. 아이를 안 갖는 방법도 있겠으나 성인이라면 알겠지만 그건 100퍼센트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외서 기획서나 번역가 지원 거절 메일을 받을 때 느끼는 우울함도 있다. 이 우울함의 명도는 때에 따라 짙어지거나 옅어지는데 너무 짙어질 때에는 잠시 쉬는 편이 좋다. 안 그러면 나의 기획력이 제로라는 생각과 번역가로서의 자질까지 의심하게 된다. 그럴 때면 외서 기획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밥벌이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애써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이제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명에 대해 얘기해 보자. 책 번역은 다른 번역과는 달리 번역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길다. 물론 두세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리기도 한다. 이제 이 일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시간은 점점 더 빨리 간다. 그러다 보면 계절이 가는 것도 잊고 이번 마감, 다음 마감만 달력에 빼곡히 적어둔 채 크리스마스를 맞기도 한다. 신랑의 미국 휴일과는 관계없이 나의 업무 일정은 흘러간다. 프리랜서는 나 스스로 휴일을 주기 전에는 휴일이 없다. 휴가까지 계산해서 계약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잘 조율해야 한다. 명에 대해 얘기하려던 건데 어찌 암에 대해 얘기한 것만 같다.
편집자가 낮에는 자신이 애호하지 않는 분야의 책을 만들고 홍보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좋아하는 책들을 탐독하듯 번역가 역시 낮에는 돈 되는 책의 번역을 하고 저녁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주워 드는 사람이 많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나 그러지 못해 차선으로 그 직업을 선택한 이들이 있기도 하다는 점 역시 편집자와 비슷하다. 이건 명인가 암인가. 잘 모르겠다.
이건 확실한 명인데 프리랜서 번역가는 낮에도 마음만 먹으면 산책할 수 있고 계절이 흘러가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이걸 요새 반강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첫째 아이를 데리러 왔다 갔다 하느라 하루에 40분씩 무조건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봄은 왜 사라진 거냐고 왜 겨울 다음에 바로 여름이냐고 늘 씩씩댔는데 알고 보니 지금이 바로 봄이었다. 그 귀한 사실은 물론, 봄이 생각보다 우리 곁에 길게 머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바로 이 산책길 덕분이다.
100세 시대라지만 내가 100세까지 정말 살 수 있을지 그때가 되면 다른 직업으로 갈아타야 하는 건 아닌지 가끔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을 하나 배워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내가 갖고 있는 게 고작 10여 년의 경력이라는 사실이 다행이지 싶다. 이 분야에서 조금씩 외연을 넓혀볼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물론 전혀 다른 분야에 뛰어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20대까지 기출문제에 대한 정답 같은 삶을 살아온 내가 큰 용기를 내 선택한 두 번째 직업 이외의 무엇을 더해볼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직까지도 주책맞게 감정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더 나은 번역가가 되려면 아무래도 공부를 더 해야 하는데 변명해보자면 그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치 번역 분량을 소화하기에 급급해 공부할 시간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저 책을 읽는 동안 게으르게 단어를 주우며 한국어 실력에 살이 붙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글도 쓴다. 나처럼 휘청이고 줏대 없는 사람에게는 글쓰기가 참 좋은 처방이다. 글로 써 보면 입으로 내뱉을 때에도 나의 생각에 확신이 생긴다. 자신감이 붙는다. 번역에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설렁설렁 운영하고 있는 내 블로그에는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잊을 만하면 어디에선가 새로 나타나 댓글을 남긴다. 차곡차곡 적어 내려간 그 글들에는 어떤 떨림과 애틋함이 녹아 있다.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어떤 번역가가 되고 싶은가. 나는 번역을 잘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 차라리 설거지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든가, 양치질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번역가가 번역을 잘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니. 하지만 번역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말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정말 번역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오래 하려면 그래야 한다. 이건 생각보다 오랜 생각 끝에 건진 답이다. 그러니 믿어도 좋다. 나는 번역을 잘하는 번역가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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