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직업 중 하나다. 그러니까 변호사나 의사처럼 확실한 경로가 눈에 읽히지 않는 직업이라는 뜻이다. 나 역시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너무 막막하여 인터넷 검색 창에 “출판번역가 되는 법”을 찾아보았다. 건질 만한 얘기가 있었던가. 결국은 서점에 가서 <나도 번역 한 번 해볼까?>라는 책을 사 와서는 밑줄 팍팍 쳐가며 읽고 또 읽었던 기억 밖에는.
가수는 혼자서 앨범을 내고 스스로를 가수라 할 수 있지만 배우는 어딘가에 출연해야,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써 줘야 배우가 된다. 그런 면에서 출판번역가는 가수보다는 배우에 가깝다. 인맥이 없는 배우가 업계 관계자에게 어떻게든 얼굴을 알리려고 애를 쓰듯 출판계에 인맥이 없는 번역가들은 자신을 알리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궁리한다.
어제는 검색 창에 중견 번역가가 살아남는 법이라고 쳐봤다. 노승영 번역가는 고맙게도 중견 번역가가 되어서 작업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중견 번역가가 아닌가 보다. 또 다른 중견 번역가 김택규 번역가가 쓴 <번역가 K가 살아남는 법>의 부제는 비장하게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이다. 표지를 보면 살아남기 위해 팔이 네 개가 된 번역가님을 만날 수 있다. 나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나보다 조금 앞서가고 있는 선배들이 펼쳐 보이는 다양한 행로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글도 쓰고 번역도 하는 선배들이 많다.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함께 쓴 박산호 번역가와 노승영 번역가도, <먹고사는 게 전부는 아는 날도 있어서>를 쓴 노지양 번역가도 있다. 글과 번역이라는 이층 집을 차곡차곡 지어 올리는 그들을 보는 건 기쁜 일이다. 나의 언젠가를 꿈꾸게 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한편으로는 허황된 꿈도 꿔 본다. 작은 가게를 차려 커피도 팔고 손님이 없을 때는 번역도 하는 모습을. 내 안의 낭만주의자는 늘 가슴 한 편에 그런 시나리오를 품고 있다. 소설가나 시인이 책방을 차려 책도 팔고 글도 쓰는, 아름답지만 돈 안 되는 그런 시나리오 말이다. 현실성이라고는 1도 없는 그 꿈을 언젠가는 펼쳐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로또에 버금가는 행운이 나에게 찾아온다면 말이다. 정말 내가 용기를 내는 날에는 홍보 전문가를 모셔 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케팅에는 정말 무지렁이인 번역가니까.
번역가들 사이에서는 경쟁보다는 동질감이나 연민 같은 감정이 우선 작용한다. 큰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는 거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얼마나 궁상떨며 일하고 있을지 짐작이 되기 때문에 누군가의 역서가 나오면 축하의 인사를 마음껏 쏘게 된다. 축하 글이 잔뜩 달린 피드를 보면서도 그들의 돈벌이를 생각하며 속으로만 한숨을 짓게 된다. 어쩜 돈으로 충족하지 못한 부분을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으로 보충하려 하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 번역가라는 종자들은.
얼마 전 브런치를 통해 책을 한 권 의뢰받았는데, 책 제목이 <You Will Leave a Trail of Stars>였다. 이 제목을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바라보는 번역가들, 또 나를 바라보며 뒤 따라오고 있을 무수히 많은(?) 번역가들이 표지 사진처럼 일렬로 수놓아진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러다 보니 떠올랐다. <수많은 별이 우리를 따라올 거야>라는 제목이. 지금의 나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지만 누군가는 또 나를 보며 꿈을 꾸기도 하지 않겠는가. 나도 누군가에게는 멋진 선배이고 싶다.
멋진 선배 중에는 권남희 번역가도 있다. 얼마 전 내신 에세이집이 배송 예정인 날, 책이 언제 오든 곧바로 읽을 수 있도록 일을 일찌감치 끝내고 오매불망 DHL 아저씨만 기다렸다. 권남희 번역가는 <오늘은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라는 꼭지에서 번역가가 직장인만큼 벌려면 한 달에 1,000매를 번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터넷 그만 하고 번역하자고 자신을 채찍질하시는데. 나는 1,000매를 번역하려면 두 달이 걸린다. 역시 더 많이 했어야 했다. 어쩌면 이것저것 딴 데 한 눈 팔기 전에 내가 원래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더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역시 프로는 기본에 충실한 자였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일을 해봤자 얼마나 더 오래 하겠어 눈이 너무 침침해지면 그만둬야지, 좀 쉬어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윤여정 배우님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윤여정 배우님은 이렇게 말했다.
“60살 넘으면서 웃고 살기로 했어. 전에는 생계형 배우여서 작품을 고를 수 없었는데, 이젠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에는 돈 안 줘도 출연해. 마음대로 작품을 고르는 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사치야.”
나의 주가가 절정에 달할지도 모를 때 일을 그만두려 했던 나의 나약함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전에는 생계형 번역가여서 작품을 고를 수 없었는데, 이젠 좋아하는 작품은 돈 안 줘도 번역해. 마음대로 작품을 고르는 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사치야.”라고 말하는 내가 얼마나 근사할지 하마터면 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은퇴할 뻔했다.
오늘날 직장인들이 평균적으로 퇴직하는 나이가 마흔아홉 살이라고 한다. 나의 진정한 가치는 남들이 다 퇴직한 이후부터 꽃필지도 모르겠다. 권남희 번역가는 “80대까지 점점 무르익은 번역을 하겠다”라고 했다. 80이면 60 하고도 20년 후다. 자유롭고 멋진 할머니라는 남의 꿈을 기웃거릴 게 아니라 그쯤의 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내 길을 내는 데 집중해야겠다. 그때가 되면 나도 돈과는 상관없이 좋아하는 작품을 골라가며 하고 있을 거다. 후배들이 이제 그만 좀 하시라고, 우리도 먹고살아야 할 거 아니냐고, 그렇게 봉사하듯 번역을 해 주면 우리는 어떡하느냐고 다그쳤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은 곤란한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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