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푼빌&슈거타운(Spoonbill&Sugartown)

브루클린의 동네책방을 소개합니다

by 물고기자리

218 Bedford Ave, Brooklyn, NY, 11249


세월이 켜켜이 쌓인 책방, 크라우드 펀딩으로 살아남다


북 서그 네이션에서 몇 블록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스푼빌 & 슈거타운은 1999년에 문을 열었다. 현대 예술, 문학, 철학, 디자인 분야의 책은 물론 아동도서까지 풍부하게 갖춘 이 서점은 새책과 중고책, 희귀본을 전부 다루고 있다. L자 모양의 이 책방에는 문이 두 개 있는데, 시끌벅적한 거리에서 들어오는 입구와 베드포드 에비뉴 미니 몰에서 들어올 수 있는 후문이다. 정면 입구의 쇼윈도에는 예술이나 건축 관련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1달러짜리 중고서적이 담겨 있는 카트도 있다. 측문으로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 서점에서 선별한 최신 소설과 비소설이 깔려 있는 테이블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꽤 튼튼해 보이는 책장들이었다. 예술 서적이 보통 두껍고 무거운 것을 감안해 그러한 책장을 들인 것인지, 이 서점만의 아이덴티티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점의 색깔을 확실히 말해주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온갖 소재와 크기, 모양의 책장들이 뒤섞여 있는 게 아닌가. 세월의 흔적이 녹아든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라이트 북스에서 느껴지던 깔끔함은 없지만 새로운 레이어가 덧대어진 콜라주 같은 느낌에는 이 서점만의 고유한 역사가 녹아 있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번화가에서 20년 넘게 운영되고 있던 이 동네 책방은 코로나가 터지면서 폐점 위기에 처했었다. 결국 서점을 살리기 위해 두 주인장은 150,000달러를 목표로 크라우드 펀딩을 했고 폭넓은 분야의 책을 취급하는 서점이자 커뮤니티 공간이었던 이 책방은 문을 닫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스푼필 & 슈거타운은 2만 달러라는 소규모 자금과 작은 미션으로 출발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예술과 책을 향한 열정을 살리는 것. 그럴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에 초점을 맞추며 지난 20년 동안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했던 이 동네 책방은 코로나가 터지면서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정부 자금 지원 프로그램에도 신청했으나 턱없이 부족했던 그들은 독자들에게 솔직히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해고했던 직원들을 다시 고용하고 임대료와 유틸리티를 지불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고. 지역민들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고 책방은 살아남았다.



2009년, 이 책방의 10주년 기념행사를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공동 창립자인 조나스 카일은 킨들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또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다른 두 서점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스푼빌 & 슈거타운이 10년 동안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예술 책을 주로 다룬 서점의 성격으로 돌렸다. 예술 책을 읽기 위해 킨들을 이용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관광객들 역시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지출이 없었더라면 서점은 진즉에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윌리엄스버그가 젠트리피케이션 되면서 유입된 새로운 이웃 역시 책방의 매출에 크게 기여했다. 2003년에만 해도 프랑스 철학자, 잭 케루악의 책을 찾는 고객들이 서점을 찾았다면 새로운 고객들은 여행 책이 없는지 물어보고 <프리코노믹스>나 <권력의 48가지 법칙> 같은 책들을 요청한다고. 내가 서점을 방문했을 때 한가운데 자리한 평대에 예술책이 아닌 경제 서적이나 베스트셀러 소설이 보인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바뀌어가는 고객의 수요에 발맞추기 위한 나름의 행보였으리라.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서점의 장점은 다양한 예술 서적을 마음껏 둘러볼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온라인이 아니라 직접 보고 느껴봐야 알 수 있는 사진의 색감이란 게 있으니까. 이번에 가니 올여름 번역한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도 보이고 그 뒤로 내가 좋아하는 헬렌 레빗의 <A Way of Seeing>도 보인다.


사울 레이터와 헬렌 레빗 둘 다 뉴욕 거리를 찍었다. 사울 레이터가 자신이 사는 이스트 빌리지를 주로 찍었다면 헬렌 레빗은 할렘, 브루클린, 브롱스 등 거대도시의 뒷골목을 사진에 담았다. 그녀의 사진에 포착된 아이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그녀가 관심을 가진 대상이 맨해튼의 마천루가 아닌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들과 이주민들이었기 때문일 터. 촬영자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놀이에 푹 빠진 아이들의 다음 모습이 궁금해 선 채로 한참을 다시 바라보고 말았다.


40년대의 아이들이나 2021년을 사는 아이들이나 노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고 저희들이 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는 모습. 관심을 갖고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포착되지 않고 사라져 버릴 어떤 가벼운 순간들. 헬렌 레빗은 “최고의 사진이 지성에서 나온다는 가정은 오산이다. 모든 예술처럼 그것은 본질적으로 직관적인 과정의 결과이며 이론이나 생각보다 예술가 자체로부터 비롯된다."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 자식의 찰나의 순간을 부모가 포착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예술서적들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동 코너가 나오는데, 이 서점은 아동 코너 또한 빈티지한 느낌이다. 일괄적인 모양의 책장을 쭉 늘어놓은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주워온 듯한 헌 책장들을 이어 붙인 데다 낡은 의자가 무심하게 놓여 있는 모습이 서점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 같기도 하다. 아이는 오늘도 이곳에 있는 책을 다 읽고 일어날 기세. 나도 옆에 앉아 책을 살펴보니 빨간 머리 앤의 아주 오래전 버전이 보인다. 수백 년 전에 쓰인 책과 최근에 출간된 책이 나란히 놓여 있다니. 나이 든 책, 젊은 책, 새 책, 헌 책이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이 다정하다.


현재 공동 창립자 마일스 벨라미가 떠나면서 조나스 칼리 혼자 서점을 지키고 있다. 그가 조나스와 함께 서점을 연 1999년, 이 동네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 3천 권이 되지 않는 책으로 서점 문을 연 두 남자는 적절한 곳에 책방을 마련했다는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던데. 윌리엄스버그 내에서도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자리한 이 책방은 그 후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9/11과 경제 위기에도 꿋꿋이 버텨낸 서점. 이번에는 긴급 수혈로 살아남았지만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러한 펀딩에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컬의 핵심은 공간이 아니라 크리에이터라는 말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맞서려면 젊은 피의 수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깔끔하게 마감하는 대신 원 상태 그대로 유지한 서점 바닥을 보며 이곳은 북스 아 매직이나 그린라이트 북스토어, 맥널리 잭슨 같은 곳과는 확실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그 고유한 분위기를 잃지 않되, 온라인 판매를 활성화하는 등 지금과는 다른 운영 방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기사를 찾아보다가 2016년 이 책방이 새로운 지점을 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로운 지점은 변화하는 동네의 수요에 발맞추기 위한 일종의 실험으로 이때만 해도 두 서점지기는 자신만만했다. 윌리엄스버그가 젠트리피케이션 되면서 임대료는 치솟았지만, 이 동네에 새로 유입된 부자들은 생각보다 책을 읽지 않았지만 자신들은 건물주의 배려로 경계적인 어려움 없이 잘 운영하고 있다고.


서점의 창고이자 사무실로 사용되던 작은 가게를 서점으로 오픈하면서 그들은 앞으로 브루클린 곳곳에 작은 책방을 여럿 마련할 거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이 지점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다른 지점들을 남아 있게 될 거라고. 새로 열 작은 서점은 본점의 소규모 버전으로 새로운 주민들의 수요에 부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구글 지도로 검색한 결과 이 지점은 영구히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펀딩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을 만큼 본점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 지점까지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은 서점들이 대부분 임시로(Temporariily) 문을 닫은 가운데 영구히(Permanentily)라는 빨간 단어가 유독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서점 밖으로 나오니 가판대에 놓인 중고 서점들이 마구잡이로 널려 있다. 헌책방의 운명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종이책을 고수하는 사람이 줄어들수록 헌책방의 미래는 밝지 않겠지만 헌책방이 지닌 매력은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서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spoonbilian이라 불러주는 다정한 주인장이 있는 책방. 사람들 간의 접촉이 줄어드는 코로나 시대의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이러한 사적인 관계 아닐까. 스푼빌 앤 슈거타운이 책방의 트레이드마크 저어새(spoonbill)처럼, 20년 전의 그날처럼,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