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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Nov 03. 2021

샘플 번역은 우리를 기죽게 한다

얼마 전, 처음 거래하는 에이전시에서 의뢰가 들어와 샘플 번역을 했다.


예전에 한 번 샘플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신경을 써서, 공을 들여서 한다고 했는데 2주 만에 연락 온 에이전시에서는 탈락이라며 선정된 역자의 샘플을 보내주었다. 억울한 마음에 샘플을 열어본 나는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10년쯤 하면 그야말로 "무엇이든 가능"할 줄 알았는데, 번역은 매 번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자만할 무렵이면 아직 부족하다고 공부 좀 더하라고, 다그친다.



대충 답장을 하고 다른 번역을 하고 있는데 그 번역문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뭐 출판사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나 보지, 안 될 수도 있지 했겠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결국 나는 내 번역문과 그 번역문을 둘 다 출력해 책상에 올려놓았다.


아직은 일일이 비교해볼 자신이 없어서 출력만 해 놓은 상태다.


정신 바짝 차리자고, 나보다 번역을 잘하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노력을  들이는 사람도 넘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해가며 번역을 했다.


말콤 글래드웰은 10년 동안 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했는데 난 왜 아직도 부족한 걸까. 심드렁해지는 건 날씨 탓이겠지.


갑자기 든 생각인데 샘플 번역은 왜 노동으로 안 쳐주나 모르겠다. 그걸 하는 데 들인 시간과 수고를 생각해 소정의 비용이라도 지급해주면 덜 기가 죽을 텐데.


잘만 쓰고 있던 원고조차 진도가 안 나가는 오늘, 못났지만 모든 것을 샘플 번역 탓으로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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