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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Sep 18. 2021

아이 키우면서 하기 좋은 일이라고요?

아이 키우면서 하기 좋을 것 같아서요,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누군가의 말은 10년 전의 나를 소환했다. 나 역시 그러한 마음을 장착한 채 이 일을 시작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번역가는 남자든 여자든,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양쪽 부모 중 육아를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 교수님들이 지나가면서 하셨던 말들이 갑자기 크게 다가오는 요즘, 육아와 일의 경계가 없는 공간에서 이 둘을 잘 해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느낀다.


아이들은 끊임없는 관심을 갈구하는 존재다. 아이가 어려서 낮잠을 많이 잘 때에는 오히려 편하게 일할 시간이 많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손이 많이 갈수록 집에서 일하는 건 전쟁에 가까워진다.


그러니, 집에서 애 키우면서 일하기 좋을 것 같아 이 일을 택하는 거라면 다른 일을 찾아보라 말해주고 싶다.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이 일과 온몸으로 해야 하는 육아는 양립을 거부한다. 게다가 돈벌이가 크게 되지 않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런 나는 왜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좋아서,라고 밖에는 답 하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나처럼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면 내 아이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이 일을 한 번 해보기를 권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그냥 직장에 안 나가고 내 아이를 내가 돌볼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려 한다면 다니던 직장을 그냥 쭉 다니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 그건 직장을 그만둬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 6년 동안 깜깜한 터널 안에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지난 3년 동안 한 아이를, 지난 6년 동안 두 아이를 끼고 일하던 나에게 그보다 적합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온전히 독박 육아를 하던 나를 살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두 아이를 돌보며 내 일을 하는 건 피만 낭자하지 않을 뿐(아니 가끔 피도 낭자했다) 지독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그런 나에게도 드디어 터널 끝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다음 주부터 둘째까지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들어가면서 9시부터 2시 반 정도까지 아이들 없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 때문에 마감이 여유 있는 출판 번역 밖에 할 수 없었는데 이제 슬슬 일의 범위를 넓혀볼까 한다. 뭘 더 할 수 있을지, 아이들 없이 편하게 일하면 얼마나 짜릿할지 한껏 들떠 있지만 현실은 일 하기 싫은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면서 피식피식 웃음만 나온다. 마감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걸 어쩐 담.


https://taling.me/Talent/Detail/3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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