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이라는 취업준비생을 위한 사이트에 오디오 강의를 올릴 당시 홈페이지에 올라간 강의 설명에서 나를 수식하는 문구를 보고 흠칫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큼지막하게 이렇게 쓰여 있었다.
“건축 공학도 출신의 번역가”
얼굴까지 나왔으면 정말 뒤로 숨고 싶었겠지만 다행히 오디오 파일이라 그리고 해외에 사는 관계로 담당자가 대리 녹음을 해주었던 터라 나만 입 다물면 아무도 “건축 공학도 출신의 번역가”가 나라는 걸 모를 거였다. 하지만 강의를 팔아야 했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기에 여기저기에 퍼다 날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공대 출신의 번역가가 결국 나의 정체성인가(그 후 나는 탈잉에서는 아예 공대 출신임을 대놓고 드러내기에 이르렀지만…)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수식어. 사방에 붙어 있는 아이들의 스티커처럼, 떼려고 해도 결국 흔적을 남기는 스티커 자국처럼 그 수식어는 나를 따라다닌다. 물론 그걸 이용해 나를 적극 마케팅하고 싶을 때도 있다. 건축이나 디자인 관련 책이 들어올 때, 그런 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면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경력도 갖다 붙인다.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는 나도 그 정도는 한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의 저자 김키미는 “마케팅은 나에게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브랜딩은 상대의 인식 속에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케팅은 내가 파는 거고 브랜딩은 팔리는 거다. 그렇다면 나의 브랜딩은 “건축 공학과 출신의 번역가”인가? 하지만 나 스스로 나를 팔려고 그렇게 홍보할 때도 있으니 그럼 마케팅인가. 아, 점점 헷갈린다. 아무래도 마케팅은 나의 영역이 아닌가 보다.
가끔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슬쩍 다른 번역가들의 전공을 살핀다. 유명한 소설을 번역한 번역가가 어김없이 영문과 출신인 것을 보면 겁먹은 개처럼 꼬리가 깨갱 내려간다. 나의 애정 하는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와 줌파 라히리의 책을 번역한 이들을 한없는 부러움으로 바라본다. <시크릿>을 번역한 김우열 번역가가 처음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공학도 출신이라는 배경에 많은 이의 관심이 쏠렸다. 내친김에 yes24에 들어가 김우열 번역가의 프로필을 살펴본다.
“번역가 김우열은 자기 계발서와 평전, 철학 등에 뛰어난 영어 전문 번역가이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평이하게 취직하여 팬택과 모토로라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 번역을 선택하게 되었다. 공학을 전공한 그의 특성은 문체에서 강점으로 드러나는데, 특유의 건조하고 분석적인 스타일은 자기 계발서와 철학 분야의 책들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만들어준다.”
언제 작성했는지 모르겠지만 남이 작성한 것만은 분명하다. 김우열 번역가는 이 프로필에 만족했을까. 지금은 번역에서는 거의 손을 떼고 출판 사업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 프로필이 계속 인터넷 서점에 남아 있는 이상 그의 브랜드 정체성은 그렇게 정립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를 바꿀 만한 가히 혁명적인 시도를 하지 않는 이상.
나도 공학도 출신이지만 건조하고 분석적인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찐득하고 비린내 날만큼 감성적인 글이 내 취향이다. 끈적끈적한 글을 읽으며 어머, 어떻게 너무 좋아, 라는 말을 감탄하는 내뱉는 나는 시종일관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만드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냥 그런 거다.
공대를 나왔다고 하면 원래 영어를 잘했겠거니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다분히 공대형 인간이어서 공대에 진학한 것도 아니고 영어를 정말 잘해서 번역가로 먹고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건 모든 일이 그렇듯 우연과 운, 성실함과 노력이 적당히 버무려진 결과일 뿐이다. 모든 일이 일어난 후에 우리는 과거 나의 선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렌즈를 잃어버리곤 한다. 그러니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해보겠다. 공대를 다니는 내내 나는 수업을 따라가느라 버벅댔고 공대에 들어온 걸 후회했으며 번역가가 되기로 했을 때 나의 영어 실력은 매우 형편없었다. 그러니 공대 나온 번역가는 이과형 인간도 문과형 인간도 아닌 애매한 인간이 어쩌다(실은 무지막지한 노력으로) 도착한 종착지일 뿐이다.
브랜딩형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SNS를 잘 운영하려면 한결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라고 하는데 인스타그램으로 나를 처음 만난 동생의 말을 들어보면 이 플랫폼으로 나의 감성을 전하는 데에는 절반쯤은 성공한 것 같다. 동생은 나에 대해 “책값 비싼 뉴욕에서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짧은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한 치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듯한 똑 떨어지는 문장을 쓰는 사람, 적당한 감성과 미세한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말했으니까. 물론 실제로 만나고 나서는 “인스타그램도 글도 그저 개인의 작은 일부를 보여주는 수단일 뿐 무슨 짓을 해도 나의 전부를, 내가 가진 여러 개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다”라며 나의 실제 이미지와 글 사이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폭로했지만 말이다.
보이는 나를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라는 게 나는 슬프고도 즐겁다. 누구에게나 돋보기처럼 확대해서 보여주고 싶은 나의 일부란 게 있지 않나. 그게 브랜딩이라면 나는 브랜딩형 인간으로 제법 잘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감추고 싶은 건 전부 감추고 보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게 진짜 브랜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도 나는 브랜딩형 인간으로 살아가려고 나의 일부를 적당히 보여준다. 보이기 싫은 모습은 사각사각 오려내고 깔끔하게 포장해 모두가 보이는 곳에 전시해 둔다. 그러니 보이는 나의 모습에 속지 마시길. 아니 알면서도 부디 속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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