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쉬어보려 했던 나를 가만히 둘 리가 없지.
중단된 번역이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
형식상 (그러니까 계약금을 받으려고) 그동안 한 번역문을 공유했더니 담당자가 그걸 읽어보았나 보다. 나는 초초고라 읽지 않았으면 싶었지만 그걸 읽고는 다시 번역을 해달라는 답변이 왔다. 나로서 손해 볼 건 없었지만 뭔가 한 풀 꺾인 기분이다. 재활용함에 넣어둔 출력본을 다시 주섬주섬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지만 섣불리 번역을 시작할 수가 없다.
얼떨결에 얻게 된 며칠의 휴식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지식을 흡수하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그런가.
내일부터 다시 꾸준하고 성실하게 매일 번역하는 나로 돌아갈 건 분명하지만 미래 트렌드를 자세히 공부하고 나니 이것 이외에도 나를 키우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따라붙는다. 작년 이 맘 때도 그래서 수입 파이프라인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트렌드를 따라잡고 나를 브랜드화하는 일을 해야 멈추지 않아야 하는지 피로감도 밀려온다.
<오늘부터 돈독하게>, <돈독한 트레이닝>을 연속으로 읽다 보니 브런치에서 그녀의 글을 봤던 때가 떠올랐다. 가난한 예술가에서 벗어나 대문호가 되기 위해 독하게 돈을 모으는 그녀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많은 부분이 증발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당장 수익을 증대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할 시간도 체력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액티브 인컴에만 의존하는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나도 유튜브를 해야 할까. 그렇게 지금부터라도 나의 것을 하나둘 쌓아야 할까. 그런 책들을 보고 메타버스, NTF 같은 용어들을 공부하다 보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아니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남들 하는 거 다 해봐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아직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미래에는 나라는 사람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특정한 틀에 가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그건 앞으로의 세상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준비작업인 한편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이해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단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주로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해왔지만, 아직도 그게 가장 편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더 많은 것이 항상 좋은 것만도 아니다.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 것만도 아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 이제 그만 해도 된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책만 파고들던 최근의 내가 현실감각을 회복하는 데 지난 며칠이 큰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더불어 성장을 강요하는 시대에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답은 없지만 한 동안 멈춰있던 질문들이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머리가 좀 아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