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자리 Sep 16. 2022

도그 워커, 균형의 기술

이른 아침, 발코니에 나가보니 차 한 대가 우리 집 앞에 멈춰 섰다. 열린 뒷좌석 창문으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뉴욕에서는 서울역에서 비둘기 보는 것만큼이나 흔한 존재가 개이므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앞 좌석 창문 너머로 또 다른 개가 모습을 드러냈고 연이어 반대편 뒷좌석에 앉은 또 다른 개가 설핏 보였다. 


‘사람은 안 탔나?’


궁금해지려던 찰나 운전석에서는 다행히 사람이 내렸다. 내가 처음에 본 개는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은지 인상을 팍 쓴 채 버티고 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우리 집은 2층인데 그다지 높지 않아 지나다니는 사람이 올려다보면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멋쩍은 듯 말했다.


“She’s unhappy.”  


그래 보였다. 잔뜩 성이 난 개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졸려 죽겠는데 무슨 산책이야.”


그녀는 이곳에서 흔하디 흔한 도그 워커였다. 결국 포기한 개가 차에서 내려오자 그녀는 차문을 닫고 길을 건너 유유히 공원 안으로 사라졌다. 큰 개 3마리에 작은 개 1마리였고 “unhappy”한 개가 가장 뒤에서 걸었다. 


한 달 전쯤에는 무려 열다섯 마리의 개를 끌고 가는 도그 워커를 보았다. 균형의 기술이 필요한 직업이었다. 열다섯 가닥의 끈이 꼬이지 않으려면 우아한 몸짓이 필요했다. 고집 센 놈을 제압하려면 힘도 있어야 했다. 짜증 나는 마음을 다스릴 성숙한 태도도 장착해야 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장면이었지만 그는 용케 그 일을 해냈다. 그의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등에 달라붙은 끈적한 땀을 보지 못한 내가 멋대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곡예에 가까운 업무 역량을 지닌 그는 분명 훌륭한 도그 워커였다.


그런데 뒤늦게 그 장면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한 번에 열다섯 마리의 개를 산책시킴으로써 그는 엄청난 시급을 벌었다(20달러/시간* 15마리=300달러). 하지만 개 입장에서 그걸 진정 산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앞서가는 개의 엉덩이에 코를 들이민 채 질서 정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행군하는 개들은(그렇다 그건 행군이었다! 아무도 열을 이탈하지 않는 행군) 진정 그 산책을 즐겼을까.


인간의 이기와 편리는 종종 인간 이외의 것들이나 자신보다 약한 인간을 경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한 번 더 생각하는 일에는 수고가 들기 때문에 우리는 나를 중심에 두는 편리한 선택을 내린다. 그리고 합리화한다.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서 ‘개 산책’이라는 일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가능한 한 많은 개를 한꺼번에 산책시키면 수입이 증대되는 세상에서 동물의 복지는 조금 덜 중요한 자리로 내려간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최소한의 윤리는 지켜져야 한다. 차를 타고 와서 산책을 해야 하는 개들에게 쾌적한 산책 환경만이라도 제공해줄 수는 없는 걸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싶어 구글에 쳐봤더니 4마리가 넘는 개를 한꺼번에 데리고 다니는 집단 산책(group walk)은 좋지 않다는 기사를 봤다. 멋져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도그 워커는 절대로 고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 역시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도그 워커를 향해 엄지 척까지 해 보였다. 하지만 시선을 바꾸어 보니 확실히 불편했다. 


개들은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사람이 그렇듯 모든 개가 다른 개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떠한 개는 큰 개나, 성별이 다른 개, 귀가 뾰족한 개를 싫어한다. 서로를 싫어하는 개들이 다 함께 산책을 할 때 그 산책이 얼마나 악몽 같은 경험이 될지는 안 봐도 뻔하다. 


싫어하는 동료와 좁은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일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테다. 싫어하는 개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걷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끈을 꼬이고 점점 짧아진다. 이 끔찍한 집단 산책은 도그 워커의 지갑은 두둑하게 해 줄지 몰라도 개에게는 절대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는 도그 워커가 산책시키는 개들이 네 마리가 넘을 때면 개들의 표정을 먼저 살핀다. 그들의 몸짓을 본다. 개의 언어를 알지는 못하는 내 눈에도 큼지막한 개들 틈에 섞여 있는 자그마한 개는 확실히 불편해 보인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채 걸어야 하는 1시간의 산책이 그 개는 전혀 반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도그 워크가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 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적정선을 아는 것. 억대 연봉의 도그 워커에게 필요한 진짜 균형의 기술은 그거일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