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뉴욕에 오신 엄마아빠가 오늘 아침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엄마아빠를 보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에어트레인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그렇게까지 눈물이 날줄 몰랐는데 몸 안의 수분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가족은 참 이상한 존재다. 옆에 붙어 있을 때에는 지긋지긋할 때가 있지만 막상 눈앞에서 사라지면 생각보다 많이 시리다. 이 나이 먹고도 엄마아빠가 보고 싶을 줄은 몰랐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엄마아빠가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는 이번에도 밥만 열심히 하다 가셨다. 바쁜 딸내미 조금이라도 쉬게 해 주려고 마지막까지 동그랑땡이며 김치며 부엌에서 종종 대던 엄마의 실루엣이 뿌연 시야 사이로 스르륵 떠오른다. 뉴욕이 가장 추울 때 나 대신 둘째를 픽업하던 아빠의 부재를, 바람이 세차게 불던 오늘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새삼 실감했다.
사랑받고 컸기에 내가 회복 탄력성이 높다는 걸 엄마아빠를 보내고 난 뒤에야 알았다. 내가 이토록 씩씩한 건 다 엄마 아빠 덕분이란 걸. 그것도 모르고 저 혼자 잘났다고 그동안 설쳤단 걸. 나의 어린 시절을 알고 나의 성장 과정을 오롯이 알고 있는, 그야말로 나의 모든 역사를 아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건 이토록 대단한 일이다.
다시 태어나면 애 같은 건 낳지 않고 즐기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자라온 마디 하나하나를 돌아보니, 그걸 앞에서 때론 옆에서 함께 겪는다는 건 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난이도 최고의 성장치가 아닐까 싶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나란 인간은 덜 자랐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만들고 간 반찬들을 하나씩 꺼내다가 또다시 또르르 흐르는 눈물. 아이들이 다가와 묻는다.
“엄마, Why are you crying? You want 할머니 back?”
함께한 추억도 많고 주고받은 선물도 많지만 이상하게 더 슬펐던 건 눈에 담아둔 엄마아빠의 모습이 많아서였단 걸 그제야 알았다. 지난 두 번의 이별에는 내 자식을 보느라 보지 못했던 엄마아빠가 이번에는 보여서였다. 그 마음이 너무 잘 보여서였다. 그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아빠가 떠난 자리가 한 동안은 시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