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있는데 둘째가 다가오더니 내 배에 척하고 손을 올렸다. 우리 집에서 내 배를 아무렇지 않게 만질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자답게. 그러더니 하는 말.
"I see baby in your belly."
"What?"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그러더니 정말 끔찍한 말을 내뱉는 게 아닌가.
"Now you have three children!"
여기서 변명을 해보자면 내 배가 나와서 그런 건 아니다. 요새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두 아이 때문에 힘들어 그런지 살이 쭉쭉 빠지는 중으로 배는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아이의 점쟁이 같은 단호한 멘트에 잠시 정신이 아찔해지며 애 셋 가진 주위 엄마들을 떠올려봤다. 늘 피골이 상접한 어떤 엄마, 언제 어디서든 세 딸과 다니는 또 다른 엄마의 얼굴도 생각났다. 아니야, 난 못해.
아이는 자신의 한 마디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재미있다는 듯 싱글벙글 웃기만 한다. 이런, 엄마를 갖고 놀렸구나.
아이는 귀엽지만 셋을 키울 자신은 없다. 게다가 출산과 관련된 모든 경험은 음... 나에겐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홉 달 내내 달고 다닌 입덧, 둘째 출산 후 정말 고통스러웠던 산후통...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 죽기 전에 내가 살면서 보지 못한 장면을 딱 하나만 볼 수 있다면 내가 태어나는 장면을 보고 싶다. 이 세상에 나를 있게 한 존재가 나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순간을. 갓 태어난 뜨끈뜨끈한 덩어리가 내 배 위에 얹힌 순간, 육아서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그 순간의 기분을 엄마는 어떤 표정으로 맞이했을까. 내가 놓쳤던 엄마의 그 표정을 보고 눈 감고 싶다.
나는 내 배에 여전히 얹혀 있는 아이의 조막 막 한 손을 맞잡으며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이제 베이비 없어. 너희 둘이면 충분해."
둘째인 나마저 딸이라서 시댁에서 뭐라 하는 걸 아빠가 막아줬다지. 그러고 보니 아빠의 표정도 궁금하다. 또 딸이라서 엄마랑 아빠는 실망했을까? 절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그 후로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으니까. 내 뒤로 남동생을 안 낳아서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다. 우리 둘이면 충분하다고 해줘서. 내 평균 이상의 자존감은 그것이 기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