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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May 06. 2020

김밥, 그게 뭐라고

마는 사람의 마음

누워 있는 김 한장(대체로 김은 누워 있지만)을 상상해보자. 캄캄한 밤처럼 누워 있는 김 한장. 그 위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 고소해진 밥을 한 주걱 펼쳐놓는다. 고루 펼쳐지도록 손끝으로 살살 달래가며 밥을 펼치면 '눈 쌓인 밤'처럼 보인다. 그 위에 길게 기찻길을 내듯 재료를 올린다.

                                                                                                         《모월모일》, 박연준


허수경 시인은 김밥을 "잘 정돈된 혼돈"이라 했으며 "박연준 시인은 "잘라야 얼굴이 나오는 음식"이라 했다. 잘라도 잘라도 같은 얼굴이 나오는 오묘한 음식. 나에게 김밥은 무엇일까?

 



김밥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만은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김밥을 좋아한다고도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그건 너무 평범한 음식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미국에 와서 종종 김밥을 찾는 나를 보고나서야 알았다. 내가 김밥을 좋아했음을. 빈곤 속에 그제야 드러나는 지극히 솔직한 취향이었다.


싸는 사람의 정성에 비해 한국에서 내가 먹던 김밥의 값이 너무 저렴했다는 생각이 든 건, 어느 날 문득 김밥이 먹고 싶었으나 이곳에서 파는 김밥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을 보고 김밥을 직접 싸서 먹어 보고 나서였다.


회사 앞으로 이어지는 서울역 입구 계단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팔던 김밥은 한 줄에 천 원이었다. 빈 속으로 출근하는 회사원들에게 단 돈 천 원에 든든한 아침을 제공했던 아주머니. 지금은 한국도 김밥 한 줄 값이 올랐겠지만 그 때라고 손이 덜 가는 음식은 아니었을 텐데,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아주머니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졌을 노동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김밥은 싸 보기 전까지는 그 맛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은은한 매력이 있다. 밥을 얼마나 얇게 펴 바르냐 혹은 각 재료의 비율을 어떻게 달리 해서 기찻길을 내느냐에 따라 같은 재료로 만든 김밥도 다른 맛이 나기 마련이고. 끄트머리로 갈수록 모자라는 재료 때문에 당근 없이 계란만 두 줄이 되어버린 김밥도 탄생하고 만다.


김밥을 쌀 때에는 그것을 먹을 사람을 유난히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먹을 테니까 매운 건 넣지 않기, 조금 더 얇게 싸기. 이렇게 마음이 들어간 음식은 싸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는 데 또 다른 반전이 있다. 김밥을 '사 먹는 사람'에서 '싸 먹는 사람'으로 건너온 지금의 나에게는 만드는 사람의 수고나 감정의 가락 같은 게 더 크게 다가온다. 김밥을 싸서 먹이고픈 자식이 생겨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나에게 김밥은 '마는 사람의 마음'인 건가.




임신했을 때 예전 동네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은 적이 있다. 한국에 있었다면 떡볶이, 김밥, 순대 따위의 분식을 달고 살았을 텐데, 하며 혼자 투덜대던 날, 동네에서 겨우 한국 분식집을 발견해 참 달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훗날 방문했을 때 혀 끝을 찌르는 조미료의 강한 맛을 느끼고 나서야 내가 지난 날 먹은 건 누군가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저 누군가가 나 대신 정성 들여 쌌을 김밥을 먹고픈 거였을지도 몰랐다. 그 맛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 사실만이 중요했을지도.  


마음이 헛헛한 날에는 김밥을 만다. 둘이서 네 줄이면 충분했던 김밥은 이제 아이들이 커가면서 여섯 줄도 모자란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오늘도 손쉽게 사 먹었을 김밥. 오늘따라 엄마가 싸 준 김밥이 먹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리운 날인가 보다.


김밥, 그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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