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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9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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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Sep 20. 2019

흔한 동생바보의 오후

어쩌면 넌 내 넘사벽 최애

최애라면 애니 타임 불변의 최애일 분

닉네임 좀 지어달라는 어이없는 부탁을 들어준 너.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물복을 먹다가, “피터 표정봨ㅋㅋㅋ” 이러면서 같이 빵 터졌던 우리.

내가 간밤에 읽은 으스스한 인터뷰 기사 얘기를 흥미롭게 듣던 너와 네 리액션에 또 신났던 나.

내 방에 들어와 검은색 티셔츠를 찾으며 내일 뭐 입을지 고민하다가, “잘 갔다 오고, 발 조심하고!”라며 인사해준 너.


오늘처럼 동생이 귀엽고 예뻐서 못 견디겠는 순간을 만끽하다 보면 꼭 이렇게 주책맞은 동생바보가 된다. 지인들과 누군가에 대해 얘기할 때 가끔-종종인가..?- 주접이 넘치다 못해 흐르는 대상이 있는데 그중 가장 높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의외로 내 동생이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이성적이고, 어른스럽고, 호불호 확실하고, 본인도 참 보통 아닌 성격인데도 언니한테는 그나마 잘 져주는 내 동생. 싸울 때는 머리채를 휘어잡기보다 주먹을 날렸던 꼬꼬마 시절, 이기적이고 못돼 처먹었던 중2병 나 때문에 서먹했던 시즌, 그리고 집안의 위기 덕에 똘똘 뭉치게 됐던 시기를 거쳐 우리는 지금의 (죽고 못 사는) 사이좋은 자매가 됐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난 동생에게 엄청 까칠하게 선 긋고, 동생의 관심과 애정을 고마운 줄도 모르고 무시하던 노답 싸가지였다.-단언컨대 내 인생 최고의 흑역사- 시간이 지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당연히 이미 늦었고, 지은 죄가 있는 내 옵션은 몇 번이고 사과하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착한 동생은 내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줬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무조건 동생한테 잘하자’는 결심을 수시로 새로 고침 하고 있다. 철없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너무 부끄럽고 염치없고 미안해서.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안 싸우는 건 아니다. 작년 연말 즈음엔 전례 없는 빅 파이트를 해서 정말 의절 직전까지 갔는데-나도 나지만 얘도 얘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먼저 백기 들고 동생을 찾아갔다. 비 온 뒤에 땅 굳는다고, 아직까지는 별로 투닥투닥하지도 않고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내가 다리를 꼬고 앉을 때마다 ‘다리 꼬지 마 송’을 부르며 날 제압하고, ‘알라딘’ VOD의 행방을 궁금해하면서.


어렸을 때 집안 어르신들이 곧잘 해주셨던 “너희는 자매라 좋겠다” “좀 더 커봐라, 자매가 최고야” 등의 얘기가 얼마나 옳은 띵언이었는지 날마다 체감한다.


자매는 최고다.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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