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리미티드에디션 - 2]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우리가 원하는 책들
물론 그것이 억울하다거나 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이 고스트북스라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많은 것을 베웠고, 또 배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알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다가도 이내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순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서점 운영자라는 삶을 사는 데엔 창작자로서의 인식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매우 좁았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서점 운영을 함께 하며 꾸준히 책도 만들어가는 몇몇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래 직업을 가지면서 창작 작업을 하는, 지금도 열심히 작업하는 다양한 작가분들을 떠올리면 정말 존경심이 생기기까지 하죠. 그런 열정이 난 왜 부족한 가라 생각하며 좌절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좌절과 절망, 이후 슬며시 찾아오는 희망의 시간들이 결국 ‘김잠'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죠.
아예 책방 업무를 할 때의 나와 창작 작업을 할 때의 나를 구분하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의 세팅값을 바꾼다면 좀 더 집중하기 용이할뿐더러 정체성에 대한 혼란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죠.
그렇게 개인의 감정과 삶을 주시하며 작업할 책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책방 운영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조금 내버려 둔 채, 오로지 한 개인으로서의 경험과 거기서 비롯된 인식에 대해 접근해 보자 생각했습니다. 책에 실린 열한 편의 에세이 외에 거의 두 배가 넘는 작업을 했지만 잘 추려내어 김잠으로서의 첫 책에 실릴 만한 작업물을 선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3일의 행사 기간 동안 제가 예상했던 판매 수치를 넘어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이 책을 펼쳐보며 정말 이 책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잘 담겨있는지, 직접 쓴 사람이 아닌 그저 한 명의 독자로서도 이야기가 진심으로 다가오는지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담고 싶은 것이 많아 중구난방이라는 느낌도 없진 않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 괜찮다는, 진심이 담긴 첫 번째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게 됩니다.
더불어 함께 발간한 신간 <eunji’s daily drawing>은, 그림 에세이 <은지의 하루만화>라는 책에서 컷만화들만 추려내어 리소 인쇄를 통해 재발간 한 도서입니다. 무선 제본의 전작과는 달리 진zine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중철 제본으로 책을 엮었으며, 좀 더 이미지에 주안점을 두기 위해 짧게나마 있던 텍스트를 모두 지우는 형태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지의 하루만화>라는 작업을 하던 당시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더불어 개인적인 슬픈 일도 있었기에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꿋꿋이 잘 견디고, 그림 작업으로 승화시켜 한 권의 책으로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일은 <은지의 하루만화>를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셨다는 것. 이 책을 통해 저희를 알게 된 분들도 계시고, 은지 작가의 작업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도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는 저희 역사에 두 가지 새로운 책을 기록할 수 있었고, 이것을 비롯한 다양한 작업물로 언리미티드에디션에서 독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질문이 드실 수도 있는데요. 자신이 독립출판을 하고 싶거나 혹은 이미 한 권이라도 내신 경우, 앞서 여러 도시를 통해 설명드린 북페어에 참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실 수도 있습니다. 독립출판물 작업물을 하나 세상에 내놓았지만, 독립서점 입고 외에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이 북페어는 어떻게 참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확한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맥이 풀리는 대답이라 어쩌면 여기서 책장을 덮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제발 그러시진 말기를..). 다만 저희가 어떻게 해왔는지, 어떤 시점에 어떤 의도로 행사들에 참가 신청을 했는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