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리미티드에디션 - 1] 다시 돌아온 서울아트북페어.
어느덧 11월이 되었습니다. 금세 추워진 날씨는 옷깃을 더욱 여미게 만들고, 날마다 기온 하강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며 중부 지방엔 눈길도 주지 않아야겠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서울에서 아주 중요한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죠. 국내 아트북페어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행사, 2024년 기준 벌써 16년을 이어오고 있는 ‘언리미티드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매년 늦가을~초겨울에 개최되는 이 행사는 국내의 수많은 개인 창작자 및 팀들이 참가하여 자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고민이 가득 담긴 창작물을 소개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해외 제작자들도 참가하여 볼거리를 더욱더 풍성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고스트북스 또한 꾸준한 참가를 통해 자체 발간 도서 및 리틀룸 상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엔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대구팀이 함께 참가를 하고 있지요. 행사 참가가 확정되면 한동안 조용하던 메신저 단체방이 다시금 활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함께 묵을 숙소를 찾기 위해, 행사 앞뒤로의 일정 공유를 위해 행사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기 때문이죠.
특히나 이 언리미티드에디션의 ‘행사에 대한 기대'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일 아트북페어 행사 규모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이 행사는 규모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것도 매우 많이. 이 행사를 기해 새롭게 발간되는 신간 도서를 비롯해 다양한 신제품들을 구매하기 위해 고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물 제작에도 특별히 신경을 쓰는데요.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이 행사를 기해 새로운 작업물을 발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 년 중 가장 핵심이 될 수 있는 대표 작업물을 발표하는 곳. 그곳이 바로 언리미티드에디션입니다.
저희 또한 신간 준비에 매우 공을 들입니다. 2023년의 경우, 이 행사를 통해 새롭게 발표한 책들이 있는데요. 바로 저의 개인 에세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과 류은지 작가의 특별 제작 도서인 <eunji’s daily drawing>입니다.
전자의 경우 제가 ‘김잠'이라는 필명을 통해 처음 발간하는 에세이입니다. 물론 아직 제 본명인 ‘김인철'이라는 사람의 존재도 모르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럼에도 ‘왜 굳이 필명을?’이라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분명 계실 텐데요. 저는 저 자신의 정체성을 구분하고 싶었습니다. 8여 년의 서점 운영의 시간 동안 물론 몇 권의 독립출판 도서를 자체 발간하기도, 기획에 참여해 다른 누군가와 함께 발간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 혼란한 순간을 맞이하곤 했습니다. 과연 이 글작업을 하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어떠한' 내가 이 글을 쓰며, 이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었죠.
여러 고민의 순간을 거치다 보니 제 내면에서 계속해서 맴돌고 있던 의문에 대한 답을 서서히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창작자로서의 존재와 책방 운영자로서의 존재가 혼재한 상태였었다는 것을 말이죠. 2016년 가장 처음 독립출판을 시작하여 창작자로서 이쪽 분야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꾸준히 이어오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듬해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며(첫 책을 만들 때는 제가 서점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많은 분들이 서점을 찾아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면 그만큼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법. 저는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은 채 그렇게 서점 운영자로서의 정체성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