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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Apr 09. 2018

30대의 차밍스쿨

'예쁜 아줌마'란 호칭을 위한 개인의 임상실험




호칭은 중요하다.


특히 타인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내 현실적 위치 점검과 자아반성의 기회를 던져주기도 한다. 가령 회사에서 나를 부르는 호칭은 '대리'가 정석이다. 그 앞에 이름 혹은 성이 붙는 정도의 변형은 오케이. 하지만 간혹 그 호칭이 '너' 혹은 '이봐 '등으로 흘러갈 때면 어떤 감이 온다. 아, 이제 내 존재감이 뭔가 깡그리 무시되거나 상당히 비루한 존재로 취급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어쨌든 둘 다 썩 좋진 않다.  


하지만 이런 건 아무래도 좋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대리' 혹은 '너' 등의 직장에서 불려지는 호칭에 대한 문제는 아니니까. 오히려 직장의 호칭이 내가 20대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무엇이라면, 30대에 접어든 요즈음 내가 신경 쓰는 호칭은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로, 내가 '어떤 아줌마'로 불려지게 될 것이냐는 것.


                                                   /


이런 생각은, 딸아이의 어린이집 방문에서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6시 넘어서 픽업을 하러 갔는데, 올망졸망한 다섯 살 꼬마들이 딸아이와 함께 우르르 몰려나온다. 귀엽다. 좀 안쓰럽기도 하고. 부모의 직장 패턴에 맞춰 '준 직장인'의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 평소처럼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한 남자아이가 나를 보고 말한다. "아리 엄마는 잘 웃어서 좋아. 우리 언제 같이 놀자"


어머, 이런 과분한 칭찬이. 기분이 좋아진 나는 뭐라도 괜찮은 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갑자기 '우와'하더니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은이 엄마다. 긴 생머리의 엄청 예쁜 엄마"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그녀를 향해 눈빛을 빛내며 말한다.  "응. 나은이 엄마 예뻐. 옷도 멋있고 목걸이도 반짝거리고" 한순간 '예쁜 엄마'에 밀려 관심이 멀어 나는, 하원 준비를 하며 속으로 이런 결심을 했다.


'예쁜 엄마, 그래 나도 예쁜 엄마가 되어보자!"


                                            /                    


하지만 일단 변신을 시작하니 몇 가지 것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먼저 시간이란 놈이다. 화장을 제대로 하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 그런데 그 '배울 시간'이 좀체 찾아오지 않았다. 새벽에는 회사에 가지 말라며 매달리는 아이들을 피해 도망 나오기 바쁘고 (흡사 노예 12년의 '탈출'편을 찍는 듯하다), 회사에서는 입 닥치고 일하는 것이 우선. 퇴근 후에는 역시 아이들과 함께 목욕, 술래잡기, 식사 삼매경에 바빴다.


그러니 막간의 점심시간을 활용해 뷰 튜버 영상을 보는 정도가 최선인데, 기술력이 영 같지 않다. 마치 '너의 손은 먹손이야'를 인증하듯 같은 듯 다른 그림만 연출되는 상황. 그러니 나 같은 화포자(화장 포기자)는 역시 동영상 강의보다 인강이 최고인데, 안타깝게도 그 선생님을 만나러 갈 시간이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역시 최소한의 예의로 립스틱 칠만 연마하는 수밖에.  



체력도 한몫하신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요가를 끊었다. 아쉬탕가, 플라잉 요가, 빈야사...이름도 어려운 다양한 종목이 있지만, '취향'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우선이다. 디스크 전초 증상에 고소공포증까지 있으니, 플라잉 요가는 포기. 아쉬탕가는 동작이 어려워서 생략. 빈야사는 절 동작의 변형이라 하니, 음~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네.


"차투랑가, 하이런지, 플랭크..." 60분 내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스트레칭. 한두 번 참석에 없던 감기 기운이 생기고, 서너 번을 가니 움직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 진짜 이놈의 저질체력. 운동을 할수록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야 하는데, 반대로 온 몸의 기(氣)가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어느새 드리워진 다크서클.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싶어 영양제를 샀다. 근육이 생길 때까진 어쩔 수 없다며 아직까진 버티고 있긴 하지만, 후아! 왜 이리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지? 어지러움증이 도져 한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 한약 한재... 지을까?



금전이란 녀석도 만만치 않다. 가장 예쁜 옷은 '새 옷'이란 진리를 받들어 백화점 옷들을 기웃거리다 가격표를 보고 기겁했다. 그래, 박리다매가 최고야! 몇몇 인터넷 쇼핑몰을 추천받아 장바구니에 옷을 담는다. 원피스 한 벌, 블라우스 하나, 재킷에 바지도 필요하네. 그리고 결재를 하려 하니, 어머! 무려 46만 원어치 옷이 장바구니에 한가득이다. 잠시 머리를 굴린다. '이 돈이면, 애들 한우 먹이고 도서 전집 두 세트는 살 돈인데. 여행을 가도, 주말여행 한 번은 거하게 다녀올 돈이고...', 고민을 하다 이내 장바구니를 비우기 시작했다.


와중, 최소한의 타협으로 7만 원짜리 원피스 하나를 질렀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불 끄고 자리에 누웠는데,  번뜩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엇! 아까 그 원피스, 내 봄 원피스랑 상당히 비슷한데? 우어! 그러고 보니 그 옷 색깔도 똑같잖아!'  짜증이 나다 못해 화가 좀 치민다. 쓸데없이 돈을 공중분해했나 싶어, 밤새 애먼 이불 킥을 반복했다.  아, 나란 인간. 진짜 마음에 들지 않네.


                                               /


'예쁜 아줌마'가 되는 길은 이렇게 쉽지 않다. 시간에 쫓기고, 체력도 달리고, 돈 한 푼 쓰는 것도 바보 같이 벌벌 떨면서, "오늘도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났구나"하는 위안과 함께 하루살이처럼 매일을 넘기는 게, 어떤  아줌마의 현실이다.


사실, 내가 이르려는 경지가 그렇게 고차원 적인 것은 아니다. TV 속 여배우들처럼 '세월도 비껴 간 고차원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것도 아니고,  고혹적인 눈빛 하나로 세상을 호릴 수 있는 마력의 미(美)를 바라는 것도 아닐 것이니. '저 절대적 아름다움의 경지에 이르신' 분들에 대한 큰 질투도 없다. 누군가는 "흥! 여유 있으니까 저러고 살지!"하며 그들을 냉소하지만, 아서라! 시간이 아깝다. 모두에겐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다. 


때문에, '예쁜 아줌마가 되는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건 '멀리 있는 누군가'에 대한 선망 혹은 질투가 아닌, '내 주변에 존재하는 예쁜 아줌마'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다. 비슷한 환경, 비슷한 처지에서도 내가 마주한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참 스스로, 부지런하게 '예쁨'이란 가치를 창조해가는 그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것은 단지 '예쁨을 가꾼다'는 의미를 넘어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다'는 어떤 유명한 광고 카피까지 떠오르게 한다. "Impossible is Nothing,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각자가 처한 악조건을 뚫어내고 목표에 골인하는, 마치 한 편의 다큐를 보여주는 것 같았던 그 스포츠 광고. 바로 그 광고의 영상 속 인물들과 내 주변의 '예쁜 그녀'들이 겹치는 것은 환각이 아닐 것이다. 영상 속 스토리텔링만큼,현실의 스토리텔링은 충분히 사연이 있고, 분투가 있고, 나름의 애잔함이 있다. 정말 하나의 일상 다큐를 가슴 찡하게 감상한 것처럼. 


                                              /


어린이집에 갔다. 이번엔 분도 바르고 립스틱도 좀 발랐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이 뛰어나오고 이번엔 다른 친구가 아는 체를 한다. "어? 아리 엄마 입술에 빨간 거 발랐네. 입술 신기한 아줌마다"


이렇게 아이들이 무언가를 눈치 채주는 게 고맙다. 조금씩 변화해 가는 내 변화들을 말해주는 그들이 사랑스럽다. 금 당장 '예쁜 엄마'는 되지 못하겠지만, 아니 사실 굉장히 요원한 일이겠지만, 혼자서 분투하는 그 '미세한 애씀의 흔적'을 '새로운 호칭'으로 발견해주는 사실이 고맙고 뿌듯하다.


나와의 분투를 거듭하는 '30대의 차밍스쿨'은 눈물겹다.

아니, 좀 더 괜찮은 아줌마가 되고자 하는 '호칭의 과정'은 참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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