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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Mar 19. 2018

도대체 연애는 왜

01. "그 남자가 날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해줘


                                               날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 


                            주절주절 미화된 연애스토리 끝에 의례적으로 따라붙는 물음.

                       연애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괜찮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무한 반복됨.


그 남자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냐고?


                                                                                    아니, 그걸 어떻게....

                                                                    

                이 질문, 벌써 백만 스물 두번 째다!



                                   /  


                                  01  

                         “그 남자가 날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해줘    


“야, 내 말 좀 들어볼래?” 


아직 미혼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꼭 이 순간이 찾아온다. 이 말이 건강이든 여행이든 미식이든 말하던 주제를 무 자르듯 끊고 들어와 은근한 목소리로 귓가에 퍼질 때면 확신은 곧 일백프로가 된다. ‘아, 이제 곧 시작이구나’  그 시작된다는 건 다름 아닌 ‘요즘 친구들이 만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일단 그 남자와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짧지 않은 도입을 거쳐 그간의 소상한 이야기가 본론으로 전개된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그 남자가 자신에게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문자를 했는지에 대한 일자별 일지. 그리고 그에 대해 본인이 어떻게 반응했는가의 상세 리액션 서술. 덧붙여 그때의 감정은 이러했다 등의 주관적 논평까지. 하지만 기승전의 알찬 구성을 거쳐 막상 결론으로 덧붙여지는 멘트는 늘 허무한 질문으로 마무리 된다. 근데 이 남자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 같아?”  


                                 /

  

내 친구 ‘주미화’는 이런 화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다. 미화의 특징은 연애할 때는 감감 무소식이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전화 혹은 친구들 모임에서 반복한다. 처음엔 ‘자랑질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라고 생각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패턴이 너무 뻔하기 때문.   

미화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정말 그 남자와의 만남은 꽃길 뿐이다. 그 남자가 하루에 몇 번이나 자신에게 문자를 하는지, 그리고 그의 애정을 얼마나 다정한 단어로 표현했는지 등을 소상히 묘사하며 가끔은 일부를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연애에 정통하지 않은 곰녀라면 이런 친구의 행동이 썩 마뜩지는 않지만 “야, 좀 닥쳐!”라고는 할 수 없기에 정말 의리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 남자가 얼마나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녀의 입을 빌어’ 재차 확인해주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일방적 두드림이다. 친구가 밑줄 그으며 강조하는 그 꽃 웃음 이모티콘은 그야말로 의례적 웃음일 뿐이며, 다음에 꼭 만나자고 말한 부분은 사람 친구들끼리 밥 한번 먹자는 식상한 멘트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며 ‘좋은 생각하며 잘자요’라는 멘트를 보여주는데 그 또한 지금 당장 헤어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그저 인간된 도리로서의 안부였을 따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황한 복원 의례적으로 붙는 그녀의 물음은 늘 한결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남자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   


                               /  


확신 없는 브랜드는 끝없는 물음을 낳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미화가 물음을 반복하는 그 남자와의 이야기가 디테일해질수록 그 분과의 만남은 반드시 그 다음 번엔 ‘The End’가 되었으니까. 차라리 미친 척하고 한 번 더 그 남자에게 전화를 해보든가, 지금 당장 술이라도 마시자며 그분의 마음을 확인해보는 것이 더 현명할 일일진대, 행동으로는 정작 옮기지 못하면서 그 남자의 진심은 확인할 수 없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애먼 친구들만 붙잡고 물어진다는 거다.    

나아가 더 한심한 건 그분이 정말 안녕을 외치며 떠나기라도 하면 그 헤어짐조차 깔끔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몇 주, 몇 달을 충격에서 허우적대며 도대체 언제부터 그가 변심하게 되었는지를 다시 그 문자를 뒤적이며 추적한다. “그래, 이 즈음에서 웃음 이모티콘이 없어”라든가 “하루에 문자를 네 번 보냈는데, 이날부터 두 번으로 확 줄었네”의 참 의미 없는 이야기를 꺼내든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CSI 버금가는 수사력을 발휘해 추적을 시작하다가, 또 한번 자신의 연애를 들어주었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으나마나 한 말들을 던지는 것이다. “걔는 날 좋아하는게 아니었어. 도대체 언제부터 이랬던 거지?”    

참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곰녀들이 여우들의 연애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 스케일이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하고 화려하다는 것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그녀들의 연애가 ‘굴욕이 없다’는 것도 한몫 할 것이다. 소위 말해 질척대지 않고 깔끔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우들의 연애가 그토록 깔끔할 수 있는 것은 애먼 남자 잡지 않고 떠난 남자 기다리지 않는 과감한 현실수용력에 있다. 그러니 곰녀들이 상대 남자들의 신호를 본인 멋대로 해석하고, 떠난 후에도 혼자 슬픔에 빠져 헛된 질문을 반복할 때, 여우들은 자신에게 맞는 남자를 찾아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공략하고, 또 열정적인 연애를 반복하는 것이다. 정말, 여우같이, 감정의 한 톨도 낭비하지 않고.  


                                 /

    

모든 남자가 내 인연일 수도 없고, 그런 인연을 기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니 지금 그 남자가 자신에게 썩 관심이 있지 않음을 조금은 인정하기 싫고 자존감이 상할지라도 괜히 그 남자의 문자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자신을 피곤하게 하지 말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 모든 연애를 장황하게 열거하지 말 것이며, 감정전가하며 넋두리 늘어놓지 말자. 차라리 그 시간에 맘 편히 팩이라도 하고,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도 틀어 더 환하게 웃어보자. 인연을 상상 속에 붙들수록 나만 피곤해지니까. 와중 진짜 내 인연은 안드로메다만큼 멀어지니까. 


복이 올 때 잡는 최고의 방법은 복이 아닌 것을 과감히 인정하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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