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레시피 ep.002 & 와인 페어링

기묘한 치킨슾

by 김묘한
나의 댕댕이 므슈는 다섯 살에 나에게 왔다.
KakaoTalk_20231211_132321003_05.jpg 기적 같은 일이었다, 녀석과의 만남은.


어느 날 중고등학교 동창인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외롭지?" 난 0.5초도 틈을 주지 않고, "아니."라고 대답했다. 난 매일 무언가 별일이 생기는 사람이고, 세상이 궁금하고, 궁금하면 알아야 하는 사람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데 외로울 틈이 어딨겠는가. (나는 외로움이라는 걸 마흔이 넘어 경험했다.)


친구는 "아니야...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넌 외로워."라고 말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소개팅이라도 시켜주려나 싶었는데, 개를 한 마리 데려가라는 얘기였다. 뜬금이 없어도 너무 없는 얘기 아닌가. 친구의 오빠가 결혼을 하면서 새언니와 함께 데리고 온 댕댕이는 오빠에게 첫째가, 그리고 바로 둘째가 생기면서 맞벌이 부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가족회의가 열렸고,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여력이 되고 믿을만한 사람 리스트를 뽑았는데, 거기 1번이 나였단다.


난 그때도 참 자유로운 인간이었지만, 힘든 아픔과 싸우고 있던 아빠가 있었다. 자유로워 보이는 겉모습 안에는 자유롭지 못한 매일의 나였다. 친구는 그냥 놀러 왔다는 하얀 거짓말과 함께 녀석을 데리고 왔다. 나를 보자마자 이빨을 드러낸 녀석에게 나는 "얏!!" 하며 혼을 냈다. 강아지가 이빨을 드러내는 건 공격적인 습성이라고 학습되었던 나는, 강아지에 대해 무지 그 자체였다. 녀석은 페키니즈라는 종이었고, 그 종의 대표적 특징이 눈이 엄청나게 크고, 코가 눌려 있으며, 부정교합이라는 점인데... 녀석은 이빨을 공격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거친 호흡을 내며 부정교합 그 매력 어필을 했던 것이었다.


친구의 하얀 거짓말과 녀석의 매력 어필에 난 다음날 웃기게 생긴 다섯 살의 녀석을 데려왔다.


그전 집에서는 간식은 일체 주지 않아 사료만 먹고 평생을 살았던 그 아이는 집을 옮기고 이틀의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그때 난 이미 졌다.) 종류별의 사료를 다 팽 당하고 종류별의 고기도 줘봤는데, 소고기(한우)가 나오고서야 입을 열었다. 그때 그 예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십 년을 넘도록 하루 두세 끼를 해 먹였다. 나는 고기를 굽는 것보다 찌거나 삶는 편을 택했고, 적색육보다는 백색육을 택했다. (녀석의 소화력이 그 편이 훨씬 좋았다.)


그중 치킨은 무항생제 홀 치킨을 구해 온갖 채소를 넣고 푹 삶아 살을 발라 주고 육수는 황태를 더해 황태 달걀죽을 끓여 줬다. 무항생제 닭을 쓰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일반 닭을 끓였을 때 얻는 누런 기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싸울 일 없이 넌 가슴살, 난 닭다리 나누어 난 향신료와 간을 더하고 원하는 채소를 더해 먹었는데, 그것은 어느새 내 영혼의 치킨슾이 되어있었다.


KakaoTalk_20231207_221004315_01.jpg 부추를 이래도 되나 싶게 넣는다. 다 먹는다.


<기묘한 치킨슾>

재료: 무항생제 홀 치킨 1마리, 양파 반 개, 마늘 5알, 샐러리 2대, 당근 1/3개, 통후추 10알, 월계수잎 1장, 정향 2개 + 부추 한 단


+ 찹쌀 한 컵

+ 칼국수

- 다른 채소 다 빼도 샐러리는 꼭 넣어야 기묘한 치킨슾 :)


1. 닭을 깨끗이 씻고, 손질을 한다. (엉덩이 쪽 지방과 날개 끝부분, 내장을 깨끗이 제거한다.)

2. 큰 팟에 닭과 모든 재료를 다 넣고 물을 닭이 잠길 정도로 붓는다

3. 40분 정도 끓여 맑으면서도 뽀얀 국물이 나오면 부추를 통으로 넣고 숨이 죽을 정도로만 익힌다.

4. 맛있게 먹는다.


+ 찹쌀을 넣겠다면 불린 찹쌀을 닭 속에 넣어 요리실로 다리를 묶어 삶는다.

+ 남은 육수에 칼국수나 죽을 끓여 먹는다.


KakaoTalk_20231207_220726006_01.jpg 깨끗하고 맑고 자신있는 육수.
KakaoTalk_20231211_182858179_04.jpg 우리나라 닭백숙과 서양이 치킨슾 그 어느 지점에 있는 기묘한 치킨슾.
KakaoTalk_20231211_182858179_03.jpg 해장도 되면서 다시 술을 부르는... (아시잖아요..)
KakaoTalk_20231211_182858179_02.jpg 찹쌀을 넣어 끓이면 뽀얗고 좀 더 구수한 국물을 얻어요. 이 찹쌀밥은 죽으로 드셔도 좋아요.
KakaoTalk_20231211_182858179_01.jpg 찹쌀을 넣었다면 요리실로 다리를 묶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찹쌀이 다 흩어져 나와 국물이 지저분해져요.
KakaoTalk_20231211_182858179.jpg 무항생제 닭이 주는 깔끔함이 있어요.
KakaoTalk_20231211_153337696_04.jpg 함께 삶은 당근은 정말 부드럽고 달콤해요.
KakaoTalk_20231211_153337696_03.jpg 40분 요리라고는 생각 못 할 깊은 맛.
KakaoTalk_20231211_153337696_02.jpg 찹쌀을 넣지 않을 때는 모든 채소를 닭 속에 스터핑으로 채워 끓이면 깔끔합니다.
KakaoTalk_20231211_153337696_01.jpg 심은 대파가 무럭무럭 자란 날, 그럼 대파도 넣어줘야죠. 요리는 자유로와야만 해요. 스스로를 믿으세요.
KakaoTalk_20231211_153337696.jpg 무항생제 닭을 잘 손질해주면 기름도 깨끗하게 올라와요.
KakaoTalk_20231207_220726006.jpg 부추와 닭은 맛으로도 영양적인 면에서도 아주 좋은 궁합이에요.
KakaoTalk_20231212_002116347.jpg 치킨 반 부추 반.
KakaoTalk_20231211_132321003_01.jpg 이 레시피를 선물해 준 여름날의 햇살만큼 찬란했던 나의 댕댕이, 므슈.
KakaoTalk_20231211_182858179_05.jpg 와인을 거부할 수 없는 맛이에요.

기묘한 와인 페어링: 치킨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는 오렌지, 감귤 등 시트러스계 과일들과 아주 좋은 궁합을 보인다. 그래서 와인도 시트러스류의 캐릭터를 많이 보이는 것들과 잘 어울리는데, 아주 살짝 쿰쿰하지만 상큼함 그 자체인 말바시아 오렌지 펫낫 와인은 기묘한 치킨슾에 베이스를 차지하는 샐러리, 후추, 정향 등에 밀리지 않으면서도 음식 자체를 방해하지 않는, 그야말로 아주 좋은 페어링을 보인다.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언오크드 샤르도네와도 아주 좋은 마리아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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